[여기 어때] 천수만의 '보석' 죽도
2021년 신축년 달력이 이제 한 장 남았다.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하는 2022년 임인년이 눈앞에 다가왔다.

앞으로만 흐르고, 되돌아오지 않는 세월의 강가에서 우리는 떠나가는 것들과 제대로 이별하고 있나.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의 종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을 수 있다.

인생철학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하게 새해 소망도 인구수만큼이나 많고 다채로울 것이다.

그 낱낱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모두의 바람이 이루어지려면 함께 사는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겠다.

제야를 앞두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설계하기 좋은 장소로 서해안 천수만보다 아름다운 곳이 있을 성싶지 않다.

가을이 깊어지던 11월 천수만 철새도래지에는 대표적 겨울 철새인 기러기 수천 마리가 벌써 찾아와 있었다.

벼를 베어낸 논바닥에 무리 지어 앉아 있던 기러기들은 떼를 지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내려앉는 군무를 펼쳐 보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온조왕 43년에 왕궁으로 날아든 기러기들을 하늘과 지상을 왕래하는 신의 사자로 해석하는 대목이 나온다.

기러기 행렬을 뜻하는 한자 말 '안항'(雁行)은 남의 형제를 높여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나란히 날아가는 기러기들이 의좋은 형제를 떠올리는 데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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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들의 이정표 '천수만'

천수만이 세계적 철새도래지가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80년대 간척사업으로 이곳에 거대한 방조제와 인공 담수호가 생겼다.

서산 A, B 지구 방조제와 부남호, 간월호이다.

과거 갯벌이던 곳에는 6천400㏊에 달하는 농경지가 조성됐다.

추수 후 농경지에 남겨진 곡식 알갱이들은 철새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철새들은 해안, 큰 강, 호수, 산맥 등을 이정표 삼아 이동하는데 천수만의 거대한 담수호와 넓은 농지는 철새들에게 뚜렷한 랜드마크가 된다.

천수만 일대는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가을부터 봄까지 기온이 내륙보다 1℃ 이상 높아 철새들의 겨울나기에 좋다.

철새 320여 종, 40여만 마리가 찾는 천수만은 철새의 낙원이다.

천수만 해안을 끼고 달릴 수 있는 임해관광도로가 있다.

A지구 방조제의 남쪽 끝 지점인 홍성조류탐사과학관에서 시작해 속동전망대∼어사리선착장∼남당항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홍성에서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할 수 있는 16㎞ 코스이다.

해 질 녘에 달리면 서해로 떨어지는 태양 속으로 빨려드는 환상에 젖기도 한다.

속동 해안, 어사포구, 남당항 등 곳곳에는 걷기 좋은 해변 길과 전망대, 공원이 있다.

속동전망대 앞 작은 섬인 '모섬'에는 뱃머리를 형상화한 포토존이 있다.

영화 '타이타닉'의 뱃머리 포즈를 연상하게 하는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이다.

어사리노을공원, 남당노을전망대도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곳들이다.

광활한 바다, 황무지 같은 갯벌, 좌초한 듯 뻘밭에 홀로 선 고깃배를 바라보고 있으면, 흐르는 시간이 천수만에 이르러 멈춰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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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한 대 없어요…걸어서 즐기는 참대나무 섬

삼면이 바다인 한국에는 1천200여 개에 달하는 섬이 있다.

작은 국토 면적에 비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교통과 기술의 발달과 함께 섬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육지로, 사람에게로 가까워진 섬은 앞으로 어떤 의미를 더할까.

섬은 적어도 여행객에게 이미 '로망'이 됐다.

섬은 바다에 떠 있는 산이다.

물 위의 섬 무리는 신들이 모여 선 것처럼 장엄하다.

사람 하나하나의 존엄은 작은 섬들의 위엄과 다르지 않으리라.
한국에는 대나무가 많아 '죽도'라고 불리는 섬이 약 50개나 된다.

이중 유인도는 9개다.

유인 죽도 중 하나가 충남 홍성군 천수만에 있다.

참대나무가 무성해 '대섬'이라고 불렸던 이 죽도는 12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졌다.

면적은 0.17㎢에 불과하다.

썰물에 수위가 낮아지면 섬과 섬은 이어지고, 관광객들은 이 섬에서 저 섬으로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섬들 안쪽 바다는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다.

작고 아름다운 죽도에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다.

70여 명인 죽도 주민과 관광객은 너나 할 것 없이 걸어 다닌다.

죽도는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에서 3.7㎞ 떨어져 있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정기 여객선 운항이 시작돼 남당항에서 15분만 배를 타면 죽도에 도착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해저 수도관이 건설돼 수돗물 공급이 시작됐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기 설치로 에너지 자립 섬이 된 지는 몇 년이 흘렀다.

죽도에는 둘레길 3개가 조성돼 있다.

울창한 대숲을 끼고 해안과 언덕을 오르내리는 둘레길에서는 동쪽으로 홍성군, 서쪽으로 태안군 안면도, 남쪽으로 보령시 해안이 손에 잡힐 듯 뚜렷하다.

이들 3개 시·군과 서산시로 둘러싸인 천수만은 바다가 잔잔하고 수심이 얕으며 갯벌이 발달해 '어족 자원의 보고' '갯벌 왕국'으로 불린다.

산과 섬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호수 같은 천수만은 나그네에게 비움과 동시에 충만의 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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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과 억새가 변주하는 '가을 교향곡' 오서산

홍성에는 명산이 둘 있다.

'충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봉산과 '서해의 등대'로 알려진 오서산이다.

병풍, 사자, 장군, 거북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기암괴석이 즐비한 용봉산의 예사롭지 않은 풍광은 먼 시가지에서도 눈에 띌 만큼 일품이었다.

백제 말 창건된 천년고찰 용봉사에는 조선 숙종 때 그린 괘불 '영산회상도'가 보존돼 있다.

오서산은 내포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781m에 이른다.

뱃사람들에게 등대로 불린 이유다.

'내포'(內浦)란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들어간 부분'이란 뜻으로 충남 서해안 지역을 지칭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홍성, 예산, 당진, 서산 등 10개 고을을 일컬으며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고 평했다.

오서산 정상에 섰더니 천수만 바다와 아직 벼를 수확하지 않은 홍성, 보령의 황금빛 들녘이 발아래 펼쳐졌다.

정상에는 능선을 따라 은빛 억새가 물결치고 있었다.

울긋불긋 산을 수놓은 단풍, 일렁이는 억새들의 춤, 시원스레 펼쳐진 황금 들판은 깊어가는 가을을 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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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산은 코스에 따라 2~5시간이면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

제일 짧은 코스는 쉰질바위에서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왕복 거리가 4㎞ 정도로, 2시간가량 걸린다.

쉰질바위 코스에는 평일인데도 산행객이 적지 않았다.

길이 잘 정비돼 있고 경관이 탁월하기 때문이리라. 발걸음 가뿐한 어린이와 일상복 차림의 젊은이도 눈에 띈다.

한국에는 등산 인구가 많다.

건강관리와 휴식이 필요한 현대인에게 등산은 꽤 괜찮은 여가 활동이다.

다만 무리하게 종주, 정상 정복을 욕심내거나, 수십 명이 한꺼번에 산을 누비는 유료 산악회 문화가 바람직한지는 고민해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체력을 고려하지 않는 산행은 위험할 수 있고, 등산 인구의 증가는 자연과 생태를 파괴하기 쉬워서다.

산행을 의지와 극기의 시험대로 삼을 게 아니라, 자연을 즐기고 탐방하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물감을 풀어놓은 듯 새파란 하늘 아래 단풍으로 붉게 타는 오서산 능선은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자연을 즐기는 멋이야말로 산행의 감칠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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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년 도시 홍성, 천 년 역사 홍주

홍성 군청은 홍주 읍성 유적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군청의 현대식 건물과 조선관아 유적이 단풍 든 나무들 사이에 어우러졌다.

현대와 옛날의 관청이 공존하는 광경은 흔치 않다.

조선 관아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헐렸거나 다른 용도로 쓰이면서 보존되지 못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하는 홍성의 역사성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조만간 새 건물을 지어 군청을 이전한다고 하니 아쉽다.

홍주읍성은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처음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성으로 지어졌다가 조선 시대 들어 석성으로 강화되고, 조선 문종(1451년) 때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읍성은 둘레가 약 1.7㎞였으나 지금은 810m만 남아 있다.

1906년 을사늑약에 반대한 홍주 의병과 일본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현장인 조양문, 관아 건물의 외삼문인 홍주아문 등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읍성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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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원래 이름은 홍주였다.

1018년부터 '홍주' 명칭을 쓰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에 홍성으로 바뀌었다.

홍성은 천 년 역사를 지닌 백 년 도시인 셈이다.

2012년 대전에 있던 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한 뒤부터는 충남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홍성은 지리적으로도 충남의 가운데이다.

홍성에서는 예부터 인물이 많이 나왔다.

고려 명장 최영, 조선 초 사육신 성삼문,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고암 이응노 등이 홍성 출신이다.

한용운 선생, 김좌진 장군, 이응노 화백의 생가터는 복원돼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 명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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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은 한우 2위, 양돈 1위 산지이며 광천김, 광천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하다.

활석암반 토굴에서 숙성시키는 토굴 젓은 맛이 달고 젓국물이 맑아 명품 새우젓으로 통한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