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의하는 국민의힘 >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운데)와 김웅 의원(맨 왼쪽)이 10일 김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계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항의하는 국민의힘 >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운데)와 김웅 의원(맨 왼쪽)이 10일 김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계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의 고발장을 접수한 지 사흘 만인 지난 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등검찰청 인권보호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이어 하루 만에 손 검사와 ‘주요 사건 관계인’ 신분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공수처의 빠른 수사 속도를 놓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야권에서는 “공수처의 도를 넘은 대선 개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수처·檢 손발 맞추나

공수처 수사3부(부장검사 최석규)는 10일 오전 11시부터 손 검사의 대구고검 사무실과 서울 자택, 김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공수처 관계자들은 10시간 뒤인 오후 9시18분께 김 의원 사무실을 떠났다. 사실상 압수수색을 중단한 셈이다. 윤 전 총장 재임 시절인 지난해 4월 검찰이 야당을 통해 여권 정치인에 대한 ‘고발 사주’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손 검사는 고발장 작성자로, 김 의원은 문서 전달자로 지목됐다. 애초 사세행은 윤 전 총장, 손 검사와 함께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권순정 부산지검 서부지청장(전 대검 대변인)도 고발했지만 이들은 입건되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검찰과 공수처가 동시에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검찰청 감찰부는 지난 2일부터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공수처가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고, 대검은 중복되지 않는 범위에서 감찰 차원의 진상조사를 충실히 하겠다”며 “검찰과 공수처가 긴밀히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은 공수처의 입건 소식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입건하라고 하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윤 전 총장이 공수처에 입건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는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설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을 부실 수사했다는 의혹과 검찰총장으로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감찰을 방해했다는 의혹으로도 공수처에 입건된 상태다.

野 “여권 눈치 보는 공수처” 반발

국민의힘은 공수처의 윤 전 총장 입건과 김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두고 “심각한 야당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현직 야당 의원에 대한 무자비하고 불법적인 압수수색도 모자라, 제1야당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해 가정과 추측에 근거한 속전속결 입건을 밀어붙였다”며 “친정권 시민단체의 고발에 맞춰 입건하고, 온갖 죄목을 늘어놓은 것은 문재인 정권 정치공작의 뻔한 패턴”이라고 지적했다.

윤 전 총장 선거캠프의 김병민 대변인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시작 이후 정권의 눈치를 보는 권력기관의 정치 개입이 노골화되고 있다”며 “윤 전 총장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기 위해 여권은 물론 검찰과 공수처가 혈안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수처가 김 의원 사무실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 지도부는 의원실에 들어가 “과잉수사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의원은 “공수처가 이번 사건과 관련 없는 조국, 정경심, 추미애, 김오수 등에 대한 자료까지 뒤지는 등 과잉·불법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며 “김진욱 공수처장의 퇴진까지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의 이례적인 강경수사에 대해 “여권 눈치 보기”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여권은 공수처가 1호 사건으로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해직교사 특별채용 의혹 등을 수사하자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신속한 수사로 여권의 신뢰 회복을 도모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윤석열 게이트’는 사상 초유의 검·당(검찰과 정당) 유착 사건”이라고 말했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사회과학과 특임교수는 “윤 전 총장의 입건은 야권 후보에 대한 의도적인 흠집내기로 보일 수 있다”며 “의혹만으로 입건했다는 측면에서 공수처의 무리한 대선 개입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공수처의 수사 결과 윤 전 총장의 고발 사주 개입 혐의가 밝혀지면 대선 후보로서 치명적인 타격을 받겠지만, 반대의 경우 윤 전 총장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전 총장이 직접 아니라고 한 만큼 혐의가 벗겨지면 홀가분하게 경선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최한종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