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등 4건
조선 후기 대표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보물 된다
조선 후기 조각승(彫刻僧)으로 이름을 떨친 색난(色難)의 대표작 4점이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이 만든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을 비롯해 그의 대표작 4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31일 밝혔다.

색난은 17세기 후반에 주로 활동한 조각승으로, 정확한 생몰연대와 행적은 알 수 없으나 관련 기록 등을 통해 1640년 전후 출생해 1660년대 수련기를 거친 후 1680년 우두머리인 수조각승이 되어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40년 넘게 활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색난은 동시기 조각승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유명 조각승이 평생 10건 내외의 작품을 남겼지만 색난의 작품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도 20여 건에 이른다.

문화재청은 "이는 당시 사람들이 색난이 만든 불상을 선호했고 그의 조각 기술을 높이 평가했음을 의미한다"면서 "이런 이유 때문인지 그는 솜씨가 뛰어난 장인이라는 뜻의 '교장'(巧匠) 또는 '조묘공'(彫妙工)으로 불렸다"고 설명했다.

조선 후기 대표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보물 된다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지금까지 알려진 색난의 작품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이르다.

총 26구로 구성된 대규모 불상으로, 발원문을 통해 수조각승으로 활동한 1680년(숙종 6년)에 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재감 있는 얼굴 표현과 넓고 낮은 무릎, 귀엽고 큰 얼굴에 크게 강조된 코의 표현 등 안정되고 아담한 조형미를 추구한 초기 제작 경향을 보여준다.

세부 표현에서는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으며, 전반적으로 17세기 후반 조각승들이 추구한 미의식이 투영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측면에서 색난은 이 시기 불교 조각의 새로운 양식을 주도한 작가로 평가된다.

조선 후기 대표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보물 된다
'고흥 능가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은 능가사 응진당에 봉안된 불상이다.

복장(腹藏·불상 안에 넣는 성물)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85년 6월 전라도 홍양현 팔영산 능가사 승려 상기가 발원했고, 색난이 수조각승으로서 그의 동료·제자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흥 능가사는 색난의 본사(本寺)이자 활동 본거지로, 이곳의 응진당 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은 그가 오래도록 머문 사찰에서 대단위 불사를 진행하고 남긴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그는 응진당 불상 조성 이외에 이곳의 다양한 불사(佛事)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 유물은 석가여래·미륵보살·제화갈라 보살로 구성된 삼존상을 비롯해 문수·보현보살과 아난·가섭존자가 육대보살로 이뤄진 구성이 이채롭고, 나한상의 표정과 몸짓이 지물(持物, 불보살 등이 손에 지니고 있는 물건)과 잘 어우러져 예술성이 탁월하다.

조선 후기 대표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보물 된다
'김해 은하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일괄'은 1687년(숙종 18년) 제작돼 김해 신어산 서림사 시왕전(현재 명부전)에 봉안된 불상이다.

명부전 존상은 모두 21구로,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귀왕, 판관, 사자, 금강역사 등 거의 완전한 구성을 갖췄다.

주로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활동 영역을 파악하는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색난의 전성기 조각 양식이 잘 드러나 있으며, 형태의 비례나 양식에 있어 아담한 체형을 추구한 17세기 후반의 조각 양식이 보인다.

특히, 시왕상의 관모(冠帽, 모자)와 발 거치대는 용, 봉황, 코끼리, 사자 등 다양한 동물을 수용해 창의적이고 새로운 도상을 창출했고, 조각 기법은 정교하고 섬세하다.

조선 후기 대표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보물 된다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색난의 50대 만년작(晩年作)을 대표한다.

경북 예천 학가산에서 화엄사로 온 승려인 계파 성능이 장육전(丈六殿, 지금의 각황전)을 중창한 후 1703년 조성한 대형 불상으로 평균 높이는 약 3.3m다.

각황전 창건과 불상 조성은 화엄사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불사(佛事)로, 전각 이름도 왕실로부터 하사받아 이때부터 장육전에서 '각황전'으로 변경됐다.

또 숙종, 인현왕후(숙종의 계비), 경종(당시 세자), 숙빈최씨(숙종의 후궁), 영조(당시 연잉군) 등을 비롯해 여흥민씨, 해주오씨 등 당시 권세 있던 가문의 인물들이 대거 불상 조성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18세기 초 최대의 왕실불사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불상에 재복장된 발원문에 따르면 7존의 불보살상은 1703년 10월 4일에 수조각승 색난을 중심으로 제자인 충옥, 일기 등 24명의 조각승이 협업해 제작했다.

색난의 거의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숙련된 기량과 원숙함이 반영된 대작이며, 수준 높은 조형성과 기술적 완전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이들 4건의 작품에 대해 조성 시기와 배경, 제작자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 동일 작가의 작품 중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다는 점, 주요 존상의 결손이나 변형이 작아 완전성이 뛰어나고 작품성이 우수하다는 점, 제작 당시부터 원 봉안처를 벗어나지 않아 유래가 뚜렷하다는 점 등에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