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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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매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법원 경매에 나온 대도시 아파트의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치솟고 있다. 서울 경매 낙찰가율은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아파트값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조금이라도 싸게 집을 마련하려는 수요가 경매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중심으로 실거래 시세와 맞먹거나 더 비싼 가격에 아파트가 낙찰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경매는 권리 관계가 복잡하고 소유권을 넘겨받는 절차도 까다로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치솟는 아파트 경매가

27일 경매정보 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에서 진행된 주거·업무·상업·공업 시설 및 토지 경매 1만668건 중 4162건(낙찰률 39.0%)이 낙찰됐다. 낙찰가율은 72.0%다. 특히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115.9%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감정가 10억원에 경매에 나온 매물이 11억5900만원에 낙찰됐다는 뜻이다.
경매로 몰리는 실수요자…감정가 29억 강남 아파트 36억에 낙찰
지난 2월 99.9%였던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3월 112.2%, 4월 113.8%를 기록하는 등 3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를 피하고 종잣돈으로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경매 시장에 관심을 갖는 수요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경매가 진행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보미도맨션 전용면적 128㎡는 10명의 응찰자가 몰려 감정가 29억3000만원보다 7억원가량 높은 36억6122만7000원에 낙찰됐다. 같은 아파트, 같은 면적의 직전 매매 실거래가인 34억4500만원보다 2억원 높은 가격이다. 앞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동양파라곤 전용 171㎡도 감정가(34억4000만원)보다 4억원 높은 38억8820만원에 낙찰됐다.

아파트 경매가격이 매매가격을 크게 웃도는 것은 이례적이다. 지지옥션 관계자는 “아파트 공급은 줄어든 반면 수요는 늘면서 감정가 이상으로 낙찰되는 현상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주택자 보유세,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가 이달 1일 시작된 이후 아파트 매물 잠김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경매가 일반적인 매매보다 규제가 덜한 점도 수요가 몰리는 요인이다. 압구정·청담·대치·잠실·여의도 등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부동산을 매매하려면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면 경매로 부동산을 사면 지자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경매는 실거래 신고 대상이 아니어서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할 필요도 없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울산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771㎡ 토지가 최근 경매로 나오자 응찰자 67명이 몰려 감정가(1억3878만원)보다 6000만원가량 높은 1억9149만원에 낙찰됐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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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턱대고 덤볐다간 낭패”

경매 매물 정보는 대법원과 각종 경매정보 제공 업체들이 제공하고 있다. 이들 자료만으로 물건 정보를 90% 이상 얻을 수 있다. 나머지 10%는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알아내야 한다. 다만 경매 물건은 채무 관계 등이 복잡해 충분한 검증 없이 무턱대고 입찰에 나섰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입찰표에 금액을 잘못 써서 보증금을 날렸다’거나 ‘낙찰받은 집에 노인이 살고 있어서 명도를 못했다’는 등의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지난달 경매에 부쳐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삼성청담 전용 129㎡는 응찰자가 입찰표에 응찰액을 쓰면서 ‘0’을 하나 더 적는 바람에 감정가(12억6000만원)의 10배에 달하는 126억원에 낙찰됐다. 이 경우 입찰 때 냈던 보증금(경매 시작가의 10%)은 돌려받지 못한다.

부동산 경매는 △권리 분석 △현장 조사(임장) △입찰서 제출 △낙찰 △잔금 지급 소유권 이전 △명도(기존 세입자 퇴거)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권리 분석은 등기부에 설정된 근저당권이나 전세권, 가압류, 압류 등의 소멸과 임차인의 보증금 인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다. 지상권과 낙찰 후 인수할 권리, 가처분에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매각 물건 명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시세와 비교해 지나치게 감정가가 낮게 나온 경우 권리상의 문제가 있는 물건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자금조달 계획도 꼼꼼히 세워야 한다. 낙찰자로 선정되면 약 한 달 내에 잔금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잔금을 내지 못하면 입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입찰 전 현장 답사도 필수다. 현장 답사를 할 때는 우선 매각물건명세서에 적힌 내용이 실제로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주택의 노후도나 임차인 현황, 관리비 체납 여부, 주변 주택 시세, 해당 지역의 부동산 호재·악재 등도 따져봐야 한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