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기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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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8일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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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씨가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벌였던 화제의 대국을 NFT(대체 불가능 토큰·Non Fungible Token)로 만들어 경매에 부쳤다. 2016년 3월 13일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의 제4국을 기록한 것이다. 이 대국에서 이세돌은 백 78수 묘수를 두며 180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인간이 알파고에 승리한 유일한 사례다.

이씨의 NFT는 바둑판 위에 흑돌과 백돌이 차례로 놓이는 모습과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 백 78수가 표시된 기보를 배경으로 촬영한 그의 사진, 서명 등이 담긴 동영상 파일을 기초로 이더리움 망에서 발행됐다. 이씨는 지난 11일 블록체인매체 코인데스크코리아를 운영하는 22세기미디어를 통해 NFT를 제작했다. 경매는 18일 오전 10시까지 NFT 판매 사이트 '오픈씨'에서 진행됐으며 60이더(약 2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이씨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념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블록체인을 이용해 디지털 형태로 실체를 만들어 소유할 수 있게 한다는 NFT의 개념이 흥미로웠다"며 "이번 NFT 발행이 바둑계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재미난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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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블록체인이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 때문에 유명해졌지만,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분산형 데이터 저장 방식을 기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 산업 전반에 많아 흥미롭게 봤다."

▶여러 대국 중 알파고와의 제4국을 NFT로 발행한 이유는.

"1995년 입단해 25년 간 프로바둑 세계에서 수천 판의 대국을 했다. 대중성과 상징성 측면에서 그 대국이 단연 압도적이다. 또 굳이 블록체인에 영원히 남긴다면 내가 진 것보다 이긴 것을 남기는 게 낫지 않나. 알파고와의 대국은 '내 바둑 인생을 담았다'고 표현해도 부담이 거의 없다."

▶NFT가 수집 가능한 대상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NFT 발행을 계기로 바둑이 대중에게 예술로서 조금 더 다가갔으면 좋겠다. 기보를 보면 한 수 한 수 둬나갈 때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현장 분위기는 어땠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런 맥락을 알면 예술품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는 바둑을 스포츠가 아닌 예술로 배운 거의 마지막 세대다. 이번 시도가 바둑이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새로운 시작이 되길 바란다. 바둑이 계속 살아남으려면 그쪽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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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로 버는 이더리움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일부는 팔고 일부는 보유하지 않을까. 나는 암호화폐, 특히 이더리움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더리움은 연료 혹은 혈액 같다. 암호화폐 시장의 흥미로운 실험은 대부분 이더리움으로 이뤄진다. 다른 코인을 만들 때 이더리움을 바탕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이더리움이 없으면 암호화폐 생태계가 안 돌아간다."

▶낙찰자가 바둑 팬이라면 함께 바둑을 둘 생각도 있나.

"물론이다. 내 바둑 인생을 담은 토큰을 산 사람이니까. 나도 굉장히 즐거울 것 같고, 바둑을 모르는 분이어도 좋다."

NFT는 각각의 토큰에 별도의 고유값을 부여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일종의 '디지털 진품 증명서'로 통한다. 그림, 영상, 음악 등의 콘텐츠 분야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경매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