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능동산-천황산-재약산-죽전마을)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운문산 정상에서…


운문산 정상에 서서 천변만화하는 구름의 움직임에 넋을 놓았다.
일본 열도를 지나는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든 탓이다.
구름은 붓이 되어 天地間을 일필휘지하고 있다.
지우고 다시 그리길 수없이 반복한다.


구름의 문, 운문산을 서둘러 내려섰다.
오늘 걸어야 할 산길 거리는 얼추 30km가 넘는다.
들머리에서 이곳 산봉까지 걸어 온 거리는 4.7km,
남은 거리가 까마득하다.


캄캄한 산길을 걸어 운문산 정상까지 빡세게 고도를 높혔는데
400여 미터나 고도를 확 낮췄다가 다시 올라야 한다.
400여 미터 내려선 곳, ‘아랫재’에서 잠시 배낭을 내렸다.
아침햇살은 어느새 운문산과 가지산을 잇는 안부,
아랫재까지 깊숙이 파고 들었다.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아랫재에서…


아랫재 환경감시초소 마루에 걸터앉아 뒤쳐진 일행 셋을 기다려
초콜릿과 과일로 조식을 대신 했다.
이번 산행은 동문 선후배 다섯이 입을 맞춰
某 산악회 영남알프스 종주팀에 합류한 것이다.


후배 K가 초반에 무리했는지 몹시 힘겨워 했다.
오늘 예정된 전 구간을 걷기엔 무리인듯 싶다.
하여 셋은 뒤쳐져 걷다가 능동산 못미쳐 배내고개로 탈출하겠단다.
P 선배와 나는 예정대로 진행키로 하고
앞서간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다시 고도차를 복구할려니 맥이 확 풀린다.
영남알프스 종주 산꾼들이 한결같이 혀를 내두르는 고된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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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을 내려다 보며… 저멀리 천황산과 재약산이…


고도를 끌어 올리기 위해선 뒷심이 필요했다.
체력 안배를 위해 쉬엄쉬엄 걸어 힘겹게 능선에 올라섰다.
남쪽 발아래, 밀양 백운산이 지척이다.
2011년 어느 가을날 올랐던 저 백운산은 骨山이다.
그 너머로 능동산 능선과 천황봉 그리고 재약산 봉우리가 또렷이 눈에 든다.
오늘 걸어야 할 영남알프스 주능선이다. 아득히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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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봉우리와 쌀바위가 보이는 능선에 서서…


백운산 갈림길에서 가지산까지 2.6km, 대체로 완만한 능선길이다.
앞서 간 종주팀들을 따라잡기 위해 잰걸음을 했는데…
욕심이 과했나? 관절이 시큰거리는 느낌이 감지됐다.
무릎 부위에 젤파스를 넉넉히 발라 마사지 한 후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신경이 온통 무릎에 쏠리는 터라 발걸음이 더뎌졌다.
예정된 전 구간을 걸을 수 있을지 슬며시 걱정된다.


게다가 빼어난 주변 풍광에 시선을 뺏겨 멈춰서길 거듭하다 보니
해 저물기 전에 날머리로 잡은 죽전마을 도착은 무리일 것 같다.
그래, 좀 더 느긋하게 걷자.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질 않나!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영남알프스 山群의 맏인 가지산(1,240m)이 바짝 다가섰다.
바람이 세차다. 은빛 억새가 춤을 춘다.
억새밭 사이 헬리포터를 가로질러 가지산 쉼터에 배낭을 내렸다.
쉼터의 호객견? ‘지산이’가 꼬리치며 반긴다.
숯검정 눈썹을 한 ‘지산이’는 가지산의 귀요미다


다시 젤파스를 꺼내 무릎을 맛사지 했다.
몇주 전 오대산에서 발목을 삐끗한 뒤로 너무 발목을 의식해서
무릎부위에 부하가 걸린 게 아닌가 싶은데…혼자 생각이다.
아무튼 오늘 하산완료 시까지 무탈하기 바랄 뿐이다.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가지산 정상에 섰다. 몸이 휘청거린다. 세찬 바람에 몸을 가누기가 쉽지않다.
두터운 먹구름 사이로 새어나온 한줄기 가을햇살은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너른 산야를 훑고 지난다.
영남알프스 여러 산봉들이 가지산 주봉 아래 납짝 엎드린 모습니다.
정상 표시석이 두개다. 한자로 음각된 ‘加智山(1,240m)’은 경북 청도군에서,
한글로 음각된 ‘가지산(1,241m)’은 경남 울주군에서 세운 듯 하다.
해발 고도도 1미터 차이가 난다.


가지산은 본래 까치산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이름으로
가(迦)는 ‘까’의 음을, 지(智)는 ‘치’의 음을 빌린 것이라 한다.
까치의 옛말은 ‘가치’, 가지산은 ‘가치메’의 이두로 된 이름이라는 설이다.


가지산은 영남9봉(운문산ㆍ가지산ㆍ천황산ㆍ재약산ㆍ간월산ㆍ신불산ㆍ
취서산ㆍ고헌산ㆍ능동산) 중 최고봉이다.


가지산은 고헌산과 운문산이 동서 방향으로 한 줄기로 뻗으면서
경상도를 남과 북으로 경계하고, 남쪽으로 S자 모양으로 뻗어 나가
능동산, 천황산, 재약산, 간월산, 신불산, 취서산을 일으켜 세웠다.


아쉬움 남겨두고 일망무제의 산봉을 내려선다.
삐쭉빼쭉 날선 바위모서리가 신경 쓰이는 너덜구간을 지나 중봉에 닿았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가지산 봉우리는 저만치 물러나 있다.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중봉에서 뒤돌아 본 가지산은…


중봉에서 20분쯤 진행하면 울산과 밀양으로 향하는 갈림길이다.
곧장 직진해 급비탈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안부 쉼터다.
걸음을 멈췄다. 허기진데다가 무릎도 쉬어가라 신호를 보내기에
등로를 비껴난 완만한 곳에 자리를 폈다.


P선배가 걱정이 되나보다. “끝까지 걸을 수 있겠냐”고 묻는다.
“일단 허기진 배부터 채우고나서 걱정합시다”
“그래, 까짓거 어차피 하산하여 1박 할건데..뭐!”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석남고개 갈림길을 지나 능동산 방향으로 직진해
배내고개 갈림길에 이르자, 내심 갈등이 일었다.
시큰거리는 무릎 도가니 때문이다.
이곳을 통과하면 더이상 탈출로는 없다. 천황산, 재약산 거쳐
예정대로 죽전마을로 쭈욱 걸어야만 한다.


뒤쳐진 일행 셋은 이곳에서 배내고개로 내려 설 것이다.
기다렸다가 합류해 탈출해 버릴까?


P선배에게 물었다.
“거북이걸음으로라도 완주하고픈데 이거 민폐를 끼치게 돼서…?”
P선배가 말했다.
“한번 더 헤드랜턴 쓰자구…”


배내고개 갈림길을 벗어나 완만한 산길은 한참 이어지다가
다시 고개를 바짝 쳐들며 나무계단으로 인도한다.
반 계단씩 하염없이 올라 능동산(983m)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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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 오른 山頂엔 팔팔한 건각들이 넘쳐났다.
대구 계명대 산악부 동아리라 했다.
그저 年式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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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산을 내려서면 일단 임도와 맞닥뜨리게 된다.
천황산 들머리 샘물상회까지는 능선길과 임도를 택해 걸을 수 있다.


일단 능선길을 택해 야트막한 산을 넘어섰더니 다시 임도다.
이번엔 능선길을 버리고 임도를 택했다.
능선에 올라앉은 거대한 건축물이 점점 다가선다.
케이블카 터미널이다.
지자체에서는 ‘밀양의 명물, 영남알프스 케이블카’라 자랑하지만
산꾼들 사이에서는 영남알프스의 흉물로 통한다.


실제 임도 구간은 3km 남짓인데, 지친 탓일까,
임도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저멀리 보이는 천황산은 ‘어서 오라’ 손짓 하건만
여전히 무릎에 온 신경이 쏠려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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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평으로 드는 門이었을까?
덩그러니 서있는 문설주를 지나자, 종주 산꾼들의 오아시스,
샘물산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재약산(1,108m)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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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산장에서 임도를 버리고 천황산 사자봉으로 향했다.
숲길을 벗어나자 억새군락지, 사자평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람이 분다. 억새평원, ‘사자평’이 춤을 춘다.
바람에 몸을 맡겨 억새의 춤에 빠져들고 싶다.
더할데 없이 매혹적인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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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밭 사이로 난 침목길을 따라 걸어 천황산 사자봉(1,189m)에 섰다.
언뜻 산세가 부드러워 보이나 정상 주변은 거친 너덜바위지대다.
석골사에서 예까지 23km를 걸었다.
아직도 재약산을 넘어 죽전마을까지 족히 8km는 더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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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탁 트인 곳이라 바람은 더욱 거칠다.
바람막이 재킷을 꺼내 입고서 걸음을 재촉했다.


천황재(970m)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늘 코스의 마지막 산,
재약산에 올라 붙었다.
10분 간격으로 주저앉아 무릎을 주물러야 할 정도다.
살살 달래가며 나아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천황재에서 재약산 봉우리까지 거리는 3km에 불과하나
지금 상태에서 체감거리는 10km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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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 서벽… 아래엔 표충사가…


재약산 0.2km 전, 갈림길에서 주암 삼거리 방향으로 꺾었다.
재약산 봉우리를 겨우 200미터 앞에다 두고 접은 것이다.


종주팀 산악대장에게 전화로 현재 상황을 전했다.
무릎 통증에 걸음 속도도 비례했다.
숲길을 빠져나와 억새밭에 이르니 길이 여러 갈래다.
산악대장이 깔고 간 ‘깔지’에 의지해 걸었다.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품다- 2


미로같은 억새길을 빠져나오자, 길은 다시 산속으로 이어졌다.
어둠도 내려앉았다. 헤드랜턴을 켰다.
깜깜한 산속에 낙오된 패잔병의 모습과 다름없다.


마지막 마의 구간인 급비탈길 3km는 그야말로 무릎과의 사투?였다.
그렇게 총 30.1km를 무려 15시간 29분(이동시간 12시간 45분,
휴식시간 2시간 43분)이나 걸려 천신만고 끝에 숙소인
유스호스텔에 도착,일행들과 합류했다.


결국 2일차 코스(간월산-신불산-영축산)는 포기하고
다음날 아침, 일행들과 헤어져 언양에서 고속버스로
홀로 귀경할 수밖에 없었으니…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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