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potism ‘ 이라는 말은 정실주의 또는 연고주의라고 번역된다. 쉽게 말하면 친인척을 우대한다는 뜻이다. 더 쉽게 말하면, 능력과는 상관없이 친인척 중에 요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특정한 직위에 손쉽게 등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위에서 끌어주고 아래에서 밀어주면 능력이 좀 모자라도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하물며 친인척이 한 국가의 고위직 공무원이라면 더할 나위없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나아가 흔히 말하는 ‘ 윗분 ‘ 이나 ‘ 높은 분 ‘ 을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큰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의미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뜻과 같은 말이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서 공정한 게임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일 것이다. 한 부류는 끔직한 바보이거나 다른 하나는 혼자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려고 매일 노력하는 철인이거나. 아니면 그냥 헛수고를 반복하는 들러리이거나. 매일 한국 사회에서 외쳐대는 공정이라는 의미는 수십 년 전 외쳤던 ‘정의사회 구현’과 무슨 차별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러리 인생을 산다. 게임의 결과는 계획 단계부터 정해져 있으니까. 이미 정해진 게임의 결과를 더 빛나게 해주고 사라지는 들러리 인생들. 공정함이 사라지고, 내부적으로 공모되어 정해진 게임의 결과들은 조직의 발전을 저하시키고 종국적으로는 조직을 망쳐버린다. 윗분들의 눈치를 살피며 복지부동하는 사람들은 nepotism으로 등용된 사람들의 눈치만 살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윗분의 눈 밖에 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조직 자체가 Nepotism의 피해자인 동시에 동조자가 되고 나중에는 가해자로 전락한다. 들러리들은 Nepotism의 피해자이고 ‘ 윗분 ‘ 의 특별 천거로 들어온 사람들이 판치는 조직은 가해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외쳐왔다. 공공조직이든 사기업이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고 글로벌 리더십, 나아가 글로벌 경쟁력을 최고의 화두로 삼아왔다. 그런데 글로벌 인재라는 사람들이 정실주의와 연고주의를 바탕으로 선정된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진정한 글로벌 인재들은 들러리가 되었고, nepotism의 수혜자는 글로벌 인재라는 껍질을 뒤집어 쓴 채 인재 행세를 한다. 우리가 외친 글로벌 경쟁력은 아예 없었다. 왜냐하면 정실연고주의로 등용된 껍질들이 호가호위를 해왔기 때문이다.

삼국시대부터 2010년 현재까지 nepotism은 늘 우리 역사에 상존해왔다. 본질과는 좀 다르지만 신라시대의 골품제부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음서제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든든한 ‘ 빽 ’ 문화에 이르기까지. 빽이 없으면 유능해도 성공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라면 공정을 논할 자격이 없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구직활동을 한다. 대세인 ‘스펙’ 쌓기에 열중들이다. 공인된 어학 시험의 점수를 높이기 많은 돈을 들여서 학원에도 가보고 해외 어학연수도 나간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분위기라면 ‘ 노력하는 들러리 ‘ 활동을 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자고 말하기 이전에 nepotism으로부터 없애야 글로벌 인재가 배출된다. nepotism과 글로벌 경쟁력은 반비례 함수관계다. 공정한 게임을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그 누가 공정한 방법으로 게임을 하려고 할까. 아는 사람을 찾아가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찾아가 부탁할 것이다. 권력자와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Nepotism이 사회에 만연하면 만연할수록 경쟁력이라는 말은 허무한 외침이 된다. 허무한 외침으로서의 글로벌 경쟁력과 왜곡된 공정함 속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재들은 노력해도 안 되는 좌절을 맞본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할 것이다. 정실연고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인지를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각성하고 절실히 반성할 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들이 이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 갈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