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작년 부동산시장 잡기 위해
고소득·고신용자 대출 규제
전문직 금리가 최대 1%P 더 높아
'따뜻한 금융'의 그늘
대출원금·이자 유예 연장 등
코로나 속 저신용자 지원 쏠림
은행업 왜곡·도덕적 해이 우려
의사·변호사가 이자 더 많이 내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의 전문직(의사, 변호사 등) 신용대출 최저 금리(고시 기준)는 대부분 직장인 전용 대출 최저 금리보다 높았다. 이들 은행 전문직 대출의 최저 금리는 연 2.23~3.87%였고, 직장인 대출 최저 금리는 연 1.92~2.89%였다. 신한은행의 전문직 대출 최저 금리는 연 2.61%로, 직장인 대출 최저 금리(연 1.92%)보다 0.7%포인트가량 높았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전문직 신용대출 최저 금리도 각각 연 3.87%와 2.96%로, 직장인 신용대출 최저 금리(각 연 2.75%, 2.53%)와 차이가 있었다. 농협은행에서는 두 직군 신용대출 최저금리가 연 2.23%로 같았고, 국민은행에서만 전문직 신용대출 최저 금리가 연 2.62%로 직장인 신용 대출 최저금리(연 2.89%)보다 소폭 낮았다.전문직 신용대출 금리가 직장인 대출보다 대부분 더 높아진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은행들은 그동안 상환 능력이 우수한 전문직에 더 높은 한도와 낮은 금리를 보장해왔다. 최저 금리 기준으로 전문직 대출 금리가 일반 직장인보다 0.1~0.5%포인트 낮았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잡기 위해 고소득·고신용자 대출부터 규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은행마다 3억~5억원가량이었던 전문직 신용대출 한도는 2억~3억원 수준으로 내렸고, 최저 금리도 전반적으로 올라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시된 최저 금리가 모든 개인에게 무조건 적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실제 대출을 받을 때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우량 고객에 대한 우대 조건이 눈에 띄게 줄어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중저신용자 문턱만 계속 낮아져
과도한 대출 규제가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한 금융 시스템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대금리뿐 아니라 대출 한도도 고소득·고신용자부터 차례로 줄어들고 있다. 전문직·고소득자의 마이너스통장(한도 대출) 한도는 최근 대부분 5000만원 이하로 줄었다. 고소득자가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가 영세 자영업자들이 받는 정책 대출 한도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정도다.반면 중저신용자의 금융 문턱은 계속 내려가고 있다. 다음달까지인 서민·자영업자 대출 원금·이자 유예 조치는 6개월간 한 차례 더 연장될 예정이다. 코로나19 피해를 받은 기업을 위해 신용등급 체계를 조정해주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고, 재해를 입은 차주에게는 민간 은행의 신용대출 원금을 감면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까지 발의됐다. 대부업체 최고 금리를 연 20%로 제한하는 ‘이자제한법’도 올 하반기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금융 상식·신용등급 체계 흔들려
코로나19 장기화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따뜻한 금융’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민간 은행의 대출 시스템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한정된 재원으로 신용등급과 회수 가능성을 고려해 대출하는데, 이 시스템이 흔들리면 자금이 필요한 곳에 돌지 못하고 회수는 어려워진다”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예금이 비효율적으로 쓰이고 경제 회복 가능성도 낮아진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 임원도 “상업은행의 존재 가치를 흔드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대출을 운영할 거면 차라리 민간에는 투자은행 업무만 남기고 정부가 직접 예금 및 대출을 해주는 은행을 운영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대출 총량 규제가 사실상 개별 차주에 대한 ‘금리 개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금융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국내 금융회사가 점차 식물화, 정치화되고 있다”며 “의사 결정은 정부가 하고 그 책임은 은행이 지는 형태의 대책이 이어지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소람/김대훈/오현아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