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층 높이 규제, 그린벨트 해제 등 내부논의 벌어지던 중 박원순 시장 사망
'그린벨트 수호투사' 없는 서울시 부동산 정책 어디로 가나
"여러분, 제가 피를 흘리고 서 있는 게 안 보이시나요.

아침에 화장해서 얼굴은 말끔한 것 같지만, 저는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저를 상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층고를 높여달라, 용적률을 높여달라…"(2019년 4월 8일, 서울시청 '골목길 재생 시민 정책 대화')
"기본적으로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인구가 조금씩 줄고 있다.

서울 인근에 이렇게 신도시를 계속 짓는 것에 회의적이다.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을 공급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2019년 6월 1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
10일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동산 철학을 대변하는 그의 발언들이다.

박 시장의 부동산 정책은 그린벨트 해제 절대 불가, 높이는 35층 이하, 재건축에 대한 비판적 시선, 임대주택 확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부동산으로 돈 벌면 투기'라는 그의 확고한 생각은 부동산에 투자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정부·여당과도 때때로 충돌을 빚었다.

서울에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이 박 시장 체제 서울시의 일관된 목소리였고, 박 시장은 그러면서 시내 전체 주택 380만호의 10% 이상을 임대주택으로 확보해 부동산 가격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를 고대했다.

다양한 세력과 충돌을 겪으면서도 2011년 10월 이후 가장 오랜 세월 서울시장 자리를 지킨 박 시장의 확고부동한 부동산 정책은 그에 대한 찬반과 별개로 이미 서울에 뿌리를 내린 지 오래라는 게 시 공무원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박 시장이 임기와 삶을 끝내면서 서울 부동산에도 격변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린벨트 수호투사' 없는 서울시 부동산 정책 어디로 가나
최근 서울시는 그린벨트와 35층 규제 해제 여부를 놓고 청와대, 더불어민주당과 보이지 않는 갈등을 빚는 상태였다.

국토교통부의 6·17 부동산 대책이 사실상 헛발질로 돌아가면서 문재인 대통령부터 나서서 "택지를 발굴해서라도 공급을 늘리라"고 했고, 민주당은 이에 부응해 박 시장에게 그린벨트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열흘 전 처음 이뤄진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을 이틀 앞뒀던 지난달 29일, 시내 일몰 대상 도시공원 대부분을 용도구역으로 묶어버려 말 그대로 "한 뼘의 땅도 내주지 않는" 정도의 강수를 서슴없이 던진 박 시장이었다.

이에 당으로부터의 요구가 빗발칠 때도 박 시장은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10년간 숱한 해제 요구에 맞선 박 시장이었다.

아예 다음 주 초 정도에 박 시장이 직접 그린벨트 해제는 없다고 선언하려는 계획도 검토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시 내부적으로는 대통령의 지시도 있었던 만큼 그린벨트 해제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박 시장이 가족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고 공관을 나선 지난 9일에도 서울시 부동산 정책과 정무 관련 주요 간부들은 대부분 회의에 임해 그린벨트 대책을 논의했다고 전해진다.

그린벨트를 풀어주지 않을 경우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35층 규제 해제 등을 논의 선상에 올리고 다각도로 검토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 모든 대안이 외부로 나왔을 때 '울타리' 역할을 했을 박 시장의 부재로 장차 서울시 정책 방향에 얼마나 힘이 실릴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장 권한대행을 맡은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서울시정은 박원순 시장의 시정철학에 따라 중단없이 굳건히 계속돼야 한다"고 했지만, 차관급 정무직 국가공무원인 서울시 부시장의 목소리 크기가 선출직 박 시장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정부는 이날 7·10 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 등 수도권 추가 중소규모 택지 발굴, 기존 신도시 등 택지 용적률 상향,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공공 재건축 추진 등을 제시했다.

추가 중소규모 택지 발굴의 경우 서울에는 남은 택지가 거의 없어서 도로 위 인공부지와 같은 땅을 활용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결국 그린벨트 해제 요구로 이어질 것이 유력하다.

택지 용적률 상향과 관련된 서울시 35층 규제는 시가 2014년 수립한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들어간 내용이다.

시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수립에 지난해 6월 착수했으며 올해 말께 윤곽을 내놓을 계획이다.

공공 재건축은 서울시가 상계주공 5단지에 적용한 '도시·건축 혁신'과 내용이 거의 같다.

다만 서울시와 충돌을 빚어온 강남권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이런 공공의 개입을 얼마나 수용할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이를 종합하면 '박원순 없는 서울시'는 정부·여당의 그린벨트 해제 요구를 맞아 35층 규제 해제 등 대안을 마련하면서 정부의 지지를 얻어 공공 재건축을 확대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해온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요구를 수렴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