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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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시 이전 직장에서 비밀 자료를 유출해 일부를 새 직장에서 공유한 경우, 자료 제작에 투입된 시간과 인건비를 고려해 손해배상을 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62민사부는 온수난방시스템 사업을 운영하는 A사의 직원 B씨가 경쟁사 C사로 이직하면서 이전 직장의 비밀 자료 300여건을 유출하고, 그 중 일부를 이메일 5건으로 공유한 사건을 두고 B씨와 C사가 공동으로 1억1700만원을 A사에게 손해배상하라고 확정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4년 A사의 직원인 B씨는 회사생활에 불만이 있어 경쟁사로 이직하기로 결심했다. B씨는 퇴사하면서 A사와 그 계열사의 비밀 자료 파일을 대량 외장하드에 저장해 갖고나갔다. 이후 B씨는 A사의 경쟁사인 C사에 취업했다. 그는 C사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C사 직원들에게 A사에서 반출한 자료 중 일부를 이메일로 전송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사는 B씨와 C사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기를 원했지만 B씨의 행위로 인해 얼만큼의 손해가 발생했는지는 추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B씨는 A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기에는 재산이 충분치 않았다. C사가 B씨의 자료 유출 행위에 개입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없었다.

해당 사건의 주요 쟁점은 비밀 자료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냐는 데 있었다. 또 새롭게 근무하게 된 회사도 손해배상에 대한 공동 책임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업무 자료가 유출돼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면 그 자료의 시장 가격을 손해액으로 보는데, 비밀 자료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 아니므로 시장가격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원고 A사는 자료 1건당 투입된 비용을 산출해 손해배상액을 측정했다. 자료 한 건을 만드는 데 투입된 기간과 인력을 고려했다. 직원들의 전체 근무 시간 중 자료 관련 업무에 투입된 시간을 계산해, 직원들의 월급에서 같은 비중만큼을 비밀 자료 가격으로 책정했다.

A사는 B씨가 이직한 C사의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유출 자료를 공유했다는 점을 들어 C사의 책임도 함께 물었다. 자료 유출 행위는 전적으로 B씨의 책임이지만, 해당 자료를 공유받은 경우에는 공동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유출한 비밀 자료 1건당 배상액을 1000만원으로 일괄 적용했다. 또 B씨와 C사가 A사와 그 계열회사들에 대하여 1억1700만 원을 공동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A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의 임철근 변호사는 "비밀 자료는 피해 가격을 책정하기 어려워 재판부가 재량 산정(재량껏 적정가를 도출하는 것)을 하거나 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짓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판례는 피해를 입은 A사가 적절한 배상액을 인정받고, C사에게도 공동 책임이 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사자의 입증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피해 구제를 위해 법원이 적절한 손배액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덧붙였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