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얼굴 본 적 없는데…전화 진찰만으로 처방전 발급 안돼"
의사가 기존에 대면 진찰한 적이 없는 환자에게 전화 진찰만으로 전문의약품 처방전을 발급해줬다면 의료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2011년 A씨는 B씨에게 비만 치료제인 플루틴캡슐 등 전문의약품을 처방해줬다. A씨가 B씨를 대면 진찰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의료법에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심에선 정작 처방이 필요한 이가 B씨가 아니라, B씨의 지인인 C씨였다는 사실이 쟁점이 됐다. A씨는 B씨에게 처방을 하기 앞서 C씨를 대면 진료했다고 했다. 당시 C씨에 대한 처방을 보류했는데, 며칠 뒤 C씨가 B씨를 통해 처방을 요청해 이를 들어줬을 뿐이며 따라서 의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C씨가 A씨가 일하는 병원에서 진료비를 결제한 내역이 없었다. 이에 1심은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에서 A씨는 의료법에 나와 있는 ‘직접 진찰’이라는 문구의 법리적 해석에 대해 파고 들었다. A씨는 “B씨의 휴대폰으로 C씨와 통화해 처방전에 필요한 여러 사항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전화 진찰을 한 다음 처방전을 발급했다”며 “의료법에서 정한 직접 진찰은 진찰 주체만 규제하는 것이고 진찰 방식의 규제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 “A씨가 C씨와 통화를 하면서 이름, 주민등록번호, 기존질환 여부, 건강상태, 증상 등을 상세히 전해 듣고 C씨의 나이가 어려 항정의약품을 뺀 약한 성분의 식욕억제제를 처방했다”며 “A씨는 전화 진찰하는 방법으로 직접 C씨를 진찰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2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도 직접 진찰이란 ‘스스로 진찰’을 의미한다며, 비대면 진찰도 의사가 스스로 진찰을 했다면 직접 진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진찰이 전화 통화만으로 이뤄지는 경우에는 최소한 그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 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씨가 전화 통화 이전에 C씨를 대면해 진찰한 적이 단 한번도 없고, 전화 통화 당시 C씨의 특성 등에 대해 알고 있지도 않았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결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