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들이 수주에 ‘올인’하면서 재건축·재개발 시공권 시장이 서로 일감을 뺏고 빼앗기는 이전투구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 수주하기 위해 무리한 조건을 내걸었다가 조합과 갈등을 빚으면서 시공사가 바뀌는 사례도 늘고 있다.

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흑석동 흑석뉴타운9구역 조합원들은 오는 14일 조합장 해임총회를 연다.

조합장 비위 의혹이 불거진 데다 사업 지연 또한 심각하다는 게 비상대책위원회의 주장이다. 집행부 교체 뒤엔 2018년 시공사로 선정된 롯데건설과 계약 해지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흑석9구역 조합원들은 롯데건설이 수주전 당시 약속했던 대안설계가 인허가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계약 해지 사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시 해지할지 촉진계획 변경 추이를 지켜보고 재논의 할지를 결정할 전망이다.

롯데건설은 조합이 마련한 건축계획의 최고 층수를 25층에서 28층으로 높이고, 동 수는 21개 동에서 11개 동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하면서 시공사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 같은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안건은 서울시와 동작구의 사전검토에서 부결됐다. 흑석9구역 비대위 관계자는 “대안설계를 반영하지 못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며 “대형 건설사 여러 곳에서 재입찰을 할 경우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다음달 착공 예정인 홍은13구역은 시공사를 세 차례나 바꿨다. 2011년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뒤 일성건설로 바꿨다가 다시 라인건설을 선정했다. 그러나 라인건설과도 아파트에 적용할 브랜드와 마감재 등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결별했다. 지난 2월 재입찰에선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권을 따냈다.

시공사가 변경되면서 사업비가 크게 늘어난 사례도 있다. 방배5구역은 시공사였던 GS·포스코·롯데건설과 사업비 대여금 등을 두고 갈등을 벌이다 계약을 해지하고 현대건설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지난해 기존 시공사들과의 소송에서 지면서 426억원을 배상해야 할 처지다. 조합원 가구당 4000여만원꼴이다.

시공사 입찰이 유찰됐던 은평구 갈현1구역은 지난달 말 대의원회에서 롯데건설과의 수의계약 방식을 확정했지만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다. 일부 조합원이 경쟁입찰 전환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조합은 앞선 입찰에서 과도한 이주비를 제안한 현대건설의 입찰자격을 박탈하고 보증금을 몰수했다가 소송에 몰린 상태다. 오는 24일 조합원총회에서 수의계약 안건이 부결되면 시공사 선정을 두고 다시 격랑에 휩싸일 전망이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