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이 잇따라 금융시장 안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단기자금시장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업어음(CP) 금리가 치솟는 등 기업의 단기자금 조달 여건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시장 자금줄이 말라붙자 삼성전자마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CP 발행 여건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자금시장 경색 상황에서 한은이 뒷짐만 쥔 채 소극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협회는 31일 CP 91일물(A1등급 기준) 금리를 연 2.19%로 고시했다. 전날보다 0.03%포인트 올랐다. 2015년 3월 4일(연 2.2%) 후 최고치다. 최근 CP 금리는 한은이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0.75%로 인하한 직후인 지난 17일 연 1.36%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날까지 10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나타내면서 0.83%포인트 급등했다.

이처럼 금리가 치솟은 것은 단기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이 넘치는 반면 시중에 공급되는 유동성은 말라버린 결과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회사채 금리가 치솟자 회사채 차환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늘었다”며 “회사채 시장이 막히자 급한 빚을 우선 막기 위해 기업들이 CP시장에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는 대림산업과 롯데푸드, 포스코에너지 등이 발행을 연기했다. 미국과 유럽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주가연계증권(ELS)을 대규모로 판매한 증권사들이 지수 폭락으로 마진콜(증거금 마련) 압박에 시달린 것도 단기자금시장 경색에 영향을 미쳤다.

자금을 조달하는 통로가 빡빡해지자 대기업의 우려도 커졌다. 5대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도 증권사와 접촉해 CP 등의 조달 금리와 발행 여건을 문의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간 CP시장에 관심도 없던 삼성전자도 동향을 체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CP시장 동향을 파악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은은 이 같은 자금시장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4월부터 시장에 적잖은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할 예정이다. 산업은행은 4월부터 기업은행과 함께 CP와 전자단기사채 2조원어치를 사들이기로 했다. 채권시장안정펀드(20조원)가 4월 초부터 가동된다. 이르면 2일부터 회사채를 사들일 계획이다.

한은은 4월부터 석 달 동안 금융회사 33곳으로부터 환매조건부채권(RP)을 무제한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할 예정이다.

김익환/정소람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