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오덕식 판사, '자격박탈' 청원에 판결 포기…사법권 신뢰 스스로 저버려
"오덕식 판사를 n번방 사건에서 제외시켜 주십시오. 최종범 사건의 판결과 故 구하라에 대한 2차 가해로 수많은 대중들에게 큰 화를 산 판사입니다. 그 후 수 많은 성범죄자들을 어이없는 판단으로 벌금형과 집행유예정도로 너그러운 판결을 내려주었던 과거들도 밝혀졌습니다. 이런 판사가 지금 한국의 큰 성착취인신매매범죄를 맡는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법부의 선택이 의심스럽습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피고인의 형사재판을 맡은 오덕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결국 교체됐다.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오 판사를 교체해달라'는 국민청원은 31일 오전 현재 42만명을 돌파했고 이같은 여론에 부담을 느낀 오 부장판사가 스스로 재배당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에 사건을 재배당해달라는 취지의 서면을 제출했다.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제14조4호)를 보면, 담당 판사가 배당된 사건을 처리하기 곤란하다는 서면을 제출하면 법원장의 위임을 받은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사건을 재배당할 수 있다. 법원의 재배당 결정으로 형사20단독의 대리부인 형사22단독 박현숙 판사가 이 사건을 맡게 됐다.

서울중앙지법은 "국민청원 사건과 관련해 담당 재판장인 오 부장판사가 해당 사건을 처리하는 데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된다"며 n번방 관련 사건을 오 부장판사 재판부가 아닌 다른 재판부에 재배당했다고 밝혔다.

특정 형사사건의 담당 판사를 교체해달라는 법원 외부 청원으로, 담당 판사가 교체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 오덕식 판사 '성인지감수성 부족하다' 쏟아지는 비판 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공유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피고인 '태평양' 이(16)모군 사건을 맡은 오 부장판사는 어떤 이유로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게 됐을까.

'n번방' 종류인 '박사방' 유료회원이던 이 군은 지난해 가을 '박사방' 운영진에 합류했다. 수사기관에 적발될 때까지 8천~1만여명이 회원이 가입한 '태평양 원정대'라는 별도의 방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자는 "판사는 어떤 판결을 내리든 아무 제재도 할 수 없는 것인가"라면서 "그는 이미 성 범죄자들을 이상할 정도로 너그러운 판결을 내려준 전적이 있는 판사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고 구하라가 남자친구 최모 씨로부터 리벤지 포르노 협박을 당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오 부장판사는 8월 구하라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 연인이었던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나머지 재물손괴, 상해, 협박, 강요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영상의 내용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최씨가 찍은 성관계 동영상을 본 사실이 알려져 2차 가해 논란에도 휩싸였다. 오 부장판사는 '구씨가 최씨에게 먼저 연락했다', '두 사람은 성관계를 가지는 사이였다', '구씨가 먼저 제지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영상 촬영이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 부장판사는 고 장자연 씨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전 언론사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오 부장판사는 무죄 선고 이유로 "생일파티에서 성추행이 있었다면 파티가 중단됐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큰 반발을 샀다.

오 판사는 2013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형사재판 관련 강사로 나서 "로펌에서 필요한 여자 변호사는 세 가지 종류다. 부모가 권력자거나, 남자보다 일을 두 배로 잘하거나, 얼굴이 예뻐야 한다"고 발언했던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 여론에 등떠밀려 재판 포기하는 판사, 국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을까

오 부장판사가 신청한 재판부 교체가 받아들여졌지만 '성인지감수성', '재판 공정성' 논란은 여전하다. 국민들은 오 부장판사가 이미 판결한 여러 성범죄 관련 사건들에 대해 불신감을 표했으며 그는 어떤 양형규정도 설명하지 않은 채 회피와 다름 없는 재판부 교체를 택했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사법권 독립이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전하고 있다.

법알못(법을 알지 못하다) 김가헌 변호사는 n번방 재판부 교체와 관련해 "최근 사법권 남용 사건들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한 듯하다"면서 "그러나 이 사건과 같이 특정 판사의 일부 판결을 문제삼아 법관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권의 독립을 해칠 수 있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국민들이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사법부의 독립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면서 "심급제도가 있어 형량이 부당한 경우 항소를 할 수 있으며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막고자 양형기준도 설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재판의 내용이 부당하든지, 결과가 잘못된 경우에 언론과 학자들은 맹렬히 비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이 나올수 있는 것이다"라면서 "그러나 현재와 같이 재판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예단을 가지고 교체를 요청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면서 "오 부장판사도 사건의 진실을 찾아 책임에 맞는 형량을 부과했다는 것을 설명하면 될 것을 왜 스스로 교체요청을 했는지 의아하고 스스로 재판의 독립을 저버린 듯해서 아쉽다"고 꼬집었다.

이어 "누가 재판을 담당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n번방 사건은 기존 음란물 유포와 완전히 다른 범죄다. 미성년자의 내일을 지워버린 반문명적, 반인륜적 범죄이므로 이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의로운 판결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