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車가 문·액셀·브레이크 제어…탑승자 위험행동도 차단
멈춰 선 자동차의 운전석 옆으로 자전거가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탑승자는 자전거를 보지 못했다. 차문을 열면 곧바로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상황. 하지만 차문은 열리지 않았다. 자동차가 자전거를 미리 알아차리고 차문을 잠갔기 때문이다. 사고 위험을 감지한 자동차는 차문뿐 아니라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도 통제할 수 있었다.

지난 14일 엔비디아가 미국 본사 가상현실(VR)룸에서 모니터를 통해 소개한 자율주행자동차 신기술이다. 팀 웅 자율주행차 기술·마케팅 담당 매니저는 “조만간 한 완성차업체가 출시할 자율주행차 신기술”이라며 “자율주행차를 도로에서 구현할 다양한 혁신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GPU 시장 점유율 71%

엔비디아 신사옥 ‘인데버 빌딩’
엔비디아 신사옥 ‘인데버 빌딩’
이날 찾은 VR룸은 3년 전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지은 엔비디아 신사옥 ‘인데버 빌딩’에 마련됐다. 인데버 빌딩 오른쪽에는 ‘보이저’로 이름 붙인 또 다른 빌딩이 형태를 갖춰갔다. 모두 미국 우주왕복선 이름에서 따왔다. 쌍둥이 빌딩(각각 7만㎡)을 위에서 보면 우주왕복선의 두 날개를 닮았다. 최근 급부상한 엔비디아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엔비디아는 1993년 설립됐다. 컴퓨터 이미지를 처리하는 반도체칩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설계하는 회사다. 2016년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어 유명해졌다. 알파고의 딥러닝 기술과 구동에 GPU가 활용된 것으로 전해지면서다.

이 회사는 자율주행차 기술에도 GPU가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AI업계 선두주자로 단숨에 부상했다.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모터스의 일론 머스크 회장이 “엔비디아는 자율주행차 개발의 핵심에 서 있는 기업”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을 정도다. 엔비디아의 지난해 매출(117억달러·약 13조5427억원)은 현대자동차(104조8000억원)의 8분의 1 수준이지만 시가총액(1500억달러·약 173조6100억원)은 현대자동차(24조3000억원)의 7배에 달했다.

세계 자율주행차 플랫폼도 장악

이날 엔비디아는 VR룸에서 자율주행차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두꺼운 백과사전 크기의 모듈로 통합한 ‘엔비디아 드라이브’도 공개했다. 자율주행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플랫폼으로 역시 GPU를 기반으로 한다. 스마트폰에 비교하면 두뇌 격인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운영체제(OS)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기능을 한다.

엔비디아는 세계 자동차업계에 이를 제공하고 있다. 웅 매니저는 “완성차업체, 티어원(1차 부품업체) 등을 포함해 수백 개 업체와 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벤츠, 아우디, 제너럴모터스(GM) 등 유럽과 미국의 완성차업체에다 디디추싱, 알리바바 같은 중국 업체와도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한국 업체들도 엔비디아와 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자율주행 관련 기술과 정보가 자연스럽게 엔비디아에 집약됐다. 엔비디아 드라이브의 활용 범위는 넓다. 드론과 로봇 등도 채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웅 매니저는 “5세대(5G) 이동통신이 본격화하면 자동차와 자동차, 자동차와 도로·인프라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커넥티드 자동차가 완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자동차의 센서와 도로, 신호등 등에 달린 센서 등 운전자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우회전을 하기도 전에 자동차가 미리 보행자의 위치를 감지하고 스스로 속도를 줄일 수 있게 된다”며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물론 자동차의 연료 효율까지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자율주행차가 본격 확산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인간의 실수로 인한 사고를 예측하고 대비하려면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웅 매니저는 “안전 관련 자율주행차 신기술은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기 이전부터 자동차업계에 확산될 것”이라며 “세계 완성차업체들이 올해부터 이런 신기술을 쏟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샌타클래라=좌동욱 특파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