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덕동에 2017년 입주한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이 아파트는 2년 뒤인 2021년 현재 전세입자들의 계약 만기가 도래한다. 전형진 기자
서울 고덕동에 2017년 입주한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이 아파트는 2년 뒤인 2021년 현재 전세입자들의 계약 만기가 도래한다. 전형진 기자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던 김승현 씨(40)는 지난달 강동구로 전셋집을 옮겼다. 직장인 광화문까지 출근시간은 20분 늘어났지만 같은 가격으로 새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어서다. 일대에 대규모 입주가 지속될 예정이어서 전세 가격이 유지될 거란 기대도 깔렸다. 이를 지켜본 김씨의 직장 동료 양호섭 씨(39)도 일산 신도시의 전셋집을 빼고 강동으로 이사했다.

◆“같은 값이면 새 아파트”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발빠른 전세입자들의 강동행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1만5000가구 규모의 새 아파트 입주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공급이 일시에 몰리면서 전세 가격이 떨어지자 도심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신축 아파트에 거주하길 원하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

강동에선 지난해 여름 ‘래미안명일역솔베뉴(삼익그린맨션1차 재건축)’를 시작으로 미니 신도시급 집들이가 시작됐다. 고덕동 일대 낡은 주공아파트 단지들이 재건축을 마치고 순차적으로 입주민을 받았다. 9월엔 4932가구 규모의 ‘고덕그라시움(고덕주공2단지 재건축)’이 입주하면서 주변 전세 가격이 크게 흔들렸다. 이 시기 전세계약을 맺은 세입자들은 전용면적 84㎡ 기준 5억원 중반대에 전셋집을 구했다. 전셋집을 옮긴 김씨와 이씨도 이 같은 경우다.

앞으로 전세 가격이 크게 오르면 이들은 2년 뒤 억대 웃돈을 주고 계약을 연장해야 한다. 고덕그라시움 같은 면적대 전세가격은 이미 최고 6억원 후반대까지 올랐다. 한국감정원 통계에서도 강동구 아파트 전셋값은 7주째 오름세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입주물량이 만만찮다.

‘고덕센트럴아이파크(고덕주공5단지 재건축·1745가구)’와 ‘롯데캐슬베네루체(고덕주공7단지 재건축·1859가구)’의 입주가 연초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롯데캐슬베네루체의 경우 전용 84㎡가 1340가구로 전체의 72%를 차지해 일대 중형 면적대 전세 가격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김씨는 “계약 만기가 도래하는 시기에 다시 나올 전세공급까지 감안하면 전셋값이 크게 오를 요인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보증금을 아낀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 장마’는 올해와 내년 내내 이어진다. 당장 다음달엔 4057가구 규모의 ‘고덕아르테온(고덕주공3단지 재건축)’이 집들이를 한다. 9월엔 ‘고덕센트럴푸르지오(917가구)’, 내년 2월엔 ‘고덕자이(고덕주공6단지 재건축·1824가구)’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모두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을 중심으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 단지들이다. 상일동 A공인 관계자는 “내년엔 3658가구 규모의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의 전세 만기가 도래해 지난해 입주한 단지들과 겹친다”며 “최근 전셋값 움직임은 ‘반짝 상승’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강동 '입주폭탄'에 웃는 세입자들…전셋값 하락 기대감↑
◆‘입주 폭탄’ 변수는 장특공제

둔촌주공재건축도 대기 중이다. 총 1만2032가구로 단일 단지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아파트 입주를 전후로 강동 일대 전세 가격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일선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둔촌동 B공인 관계자는 “올해 초 착공이 이뤄지면 늦어도 2023년 하반기엔 준공될 예정”이라면서 “단지 규모를 고려했을 때 세입자 모시기 경쟁이 이른 시기에 이뤄지면서 전셋값 하락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새 아파트 입주가 이어지면서 전셋값 하락 압력이 거세지면 세입자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 비슷한 가격에 계약을 연장하거나 인근 단지로 ‘전세 갈아타기’를 할 수 있어서다. 강동구에 줄지어 들어서는 신축 아파트는 지하철역이 가깝고 주변 학군이 뛰어난 게 장점으로 꼽힌다. 도심 단지들과 달리 명일공원과 길동공원등 녹지가 많은데다 한꺼번에 재건축이 이뤄져 주변이 잘 정비된 게 특징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책 변수로 전셋값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16 대책’을 통해 1주택자들의 장기보유특별공제 요건이 강화된 까닭이다.

1주택자들이 2021년부터 집을 매각할 때 양도소득세를 줄이려면 직접 입주해 살아야 최대 40%(10년)의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다. 보유기간(40%·10년)과 합치면 공제율은 최대 80%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지난해 1만가구에 가까운 ‘헬리오시티’가 입주할 때도 장특공제 때문에 입주하는 집주인이 늘면서 전세가격이 예상보다 빠르게 반등했다”며 “강동 아파트는 매매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어 양도세를 고려한 직접 입주가 늘어날 경우 2년 뒤 전셋값은 현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