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화점들은 그동안 온라인 사업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백화점 주요 소비자가 쿠팡 등 e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과 가격, 상품, 배송 등으로 ‘혈투’를 벌이고 있는 대형마트, 슈퍼 등과 달랐기 때문이다. 고가 상품을 e커머스에서 사는 소비자가 많지 않다는 판단도 깔려 있었다.최근 이 시장이 변하기 시작했다. 백화점이 아닌 TV홈쇼핑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았던 e커머스에서도 상품이 팔리기 시작했다. 홈쇼핑은 방송 편성을 늘리고, 이베이코리아는 명품 감정 서비스를 시작했다. ‘짝퉁’ 여부를 판별해 줬더니 명품 판매가 크게 늘었다. 백화점들도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명품마저 빼앗기면 오프라인 백화점 영토가 더 좁아진다는 위기감은 이들을 온라인 시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온라인서 주문하고 매장서 경험롯데백화점이 치고 나왔다. 온라인몰 ‘롯데 프리미엄몰’을 19일 연다. 보테가베네타 MSGM 등 해외 명품 18개를 비롯 프리미엄 브랜드 234개를 판매한다. 상품 숫자가 2만4000여 개에 이른다. 연내 브랜드를 360개까지 늘릴 예정이다.우선은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하는 ‘신상품’을 그대로 옮겨 놓기로 했다. 이월·병행수입 상품 위주인 다른 온라인몰과 다르다는 게 롯데 측 주장이다. 롯데 관계자는 “주문하면 백화점에서 직접 보내주기 때문에 짝퉁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대신 가격은 오프라인 매장과 같다. 하나의 가격을 유지하려는 명품 브랜드 입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사후관리(AS)를 백화점에서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온라인몰 판매 상품 대부분은 고장이 나도 백화점에서 수리받기 힘들다. 일부 가능한 것이 있지만 그나마도 유상 처리가 대부분이다. 롯데백화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똑같은 조건으로 판매한다.‘피팅 예약’ 서비스도 한다. 온라인으로 예약한 뒤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을 만져볼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 없는 상품도 온라인으로 예약한 후 매장에서 입거나 신어볼 수 있다. 원하는 상품을 찾느라 여러 매장을 다닐 필요도 없다. 국내에 가장 많은 30여 개 매장을 가진 롯데백화점의 강점을 살린 서비스다. 또 구매를 많이 한 프리미엄 회원을 상대로는 ‘프라이빗 기획전’ ‘프리 오더 서비스’를 연다. 여기에 트렌드, 색상, 소재 등을 추천해 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도 새롭게 선보인다.밀레니얼 소비자에 대응다른 백화점도 온라인에서 명품을 팔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2013년 구찌를 처음 온라인에서 판매했다. 이후 버버리 몽블랑 페라가모 보스 등 20여 개로 늘렸다. 현대백화점도 ‘더현대닷컴’에서 전문관 형태로 해외 패션 브랜드를 판매 중이다. MSGM 비비안웨스트우드 등 20여 개 명품이 있다. 하지만 롯데백화점 같은 별도 온라인몰 형태는 아니다.롯데는 우선 ‘엘롯데’ 내에 프리미엄관을 뒀다가 조만간 떼어내 독립시킬 예정이다. 롯데백화점이 ‘에비뉴엘’이란 별도의 명품관을 운영하는 것을 온라인에서도 비슷하게 구현하는 것이다.롯데백화점이 온라인에서 해외 명품을 강화하는 것은 20~30대 밀레니얼 소비자가 급격히 유입되고 있는 영향이 크다. 이들은 중장년층과 달리 온라인에서도 명품 구매를 꺼리지 않는다.명품 브랜드도 온라인 소비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브랜드 이미지 훼손 우려 탓에 온라인에 소극적인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루이비통은 최근 국내에 자체 온라인몰까지 열었다. 샤넬은 주얼리와 뷰티 상품을 중심으로 온라인 채널을 확장 중이다.전형식 롯데백화점 디지털전략본부장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간 경계를 없애는 O4O(online for offline)의 일환으로 온라인 프리미엄몰을 열었다”며 “온라인몰을 통해 단순히 매출을 올리는 게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모델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다만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구찌 등 최상위 명품을 입점시키지 못했고, 가격 메리트가 없다는 점은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신세계백화점의 프리미엄 브랜드 ‘분더샵 컬렉션’이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에 이어 영국에도 진출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분더샵 컬렉션이 영국 해러즈백화점 2층에 정식 입점해 가죽 스커트, 캐시미어 니트 등 100여 종의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17일 밝혔다.분더샵은 2017년 9월 미국 시장에 첫선을 보인 이후 지난해에는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에 입점하는 등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하고 있다. 봉마르셰 백화점에서는 입점 1년 만에 목표 매출의 20%를 초과하는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T커머스 기업 SK스토아는 홈쇼핑업계 후발주자다. CJ오쇼핑, GS샵 등과 같은 TV 홈쇼핑의 후광을 기대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SK스토아 경영진은 채널 인지도를 크게 높일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한 끝에 백화점 등이 성공시킨 ‘패션 자체상표(PB)’를 만들기로 했다. 핵심고객은 TV 리모컨을 통한 소비 빈도가 높은 ‘40~60대 여성’으로 잡았다. 1년간 전담팀(TF)을 꾸려 준비한 끝에 패션 브랜드 ‘헬렌카렌’을 내놨다. 패션 PB 경쟁에 T커머스 업체까지 가세했다. 유통업체들의 패션 PB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업계 자존심 된 패션 PB업계 1위 롯데백화점은 최근 의류 PB ‘엘리든 컬렉션’을 출시했다. 엘리든은 롯데백화점 고가의 편집매장이다. 운영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상품 기획과 디자인 등 모든 것을 롯데가 직접 한다. 첫 제품으로 코트, 패딩, 카디건 등 총 8개 품목을 앞세웠다. 내년부터는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한 제품도 내놓기로 했다.롯데백화점이 엘리든에 힘을 실은 것은 신세계백화점의 ‘델라라나’를 의식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델라라나는 신세계가 백화점업계에서 가장 먼저 내놓은 패션 PB다. 2016년 캐시미어 전문 브랜드로 출발해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다.백화점 PB로 패션 추락 막을까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는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패션 PB 강화에 나서는 것은 유통업체들의 공통 목표다.백화점은 이외에도 더 절박한 이유가 있다. 원래 ‘백화점은 의류업’이란 말이 있었다. 매출에서 의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의류 판매 네트워크가 다양해지고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자 백화점에서 의류사업 위상은 추락했다.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백화점들은 PB 출시에 적극 나서고 있다. PB는 백화점에 다양한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선 가격을 낮출 수 있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패션업체 브랜드 제품 한 벌을 팔면 보통 판매가의 30%가 백화점의 몫”이라며 “백화점 등 유통사들이 직접 제조하면 기성 브랜드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갑자기 세일을 하는 등 브랜드 운영도 유연하게 할 수 있다. PB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과정에서 쌓이는 제조업 노하우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홈쇼핑은 1위 브랜드가 패션 PB 다수홈쇼핑쪽은 더 치열한 패션 PB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홈쇼핑에서 의류 판매량이 매년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가장 적극적인 회사는 CJ ENM 오쇼핑부문이다. 2001년 언더웨어 ‘피델리아’를 시작으로 꾸준히 패션 PB를 내놓고 있다. 2015년 선보인 ‘VW베라왕’을 비롯해 ‘셀렙샵 에디션’ ‘장 미쉘 바스키아’ 등 다양한 패션 PB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엣지(A+G)’의 가을·겨울 시즌 상품 수를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늘리고, 잡화 라인을 처음 선보이기도 했다.롯데홈쇼핑은 고급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패션 PB ‘LBL’의 가을 신상품을 선보이며 남성 명품 패션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캐시미어 등 최상급의 소재를 적용했다.현대홈쇼핑은 ‘밀라노스토리’와 작년 판매 1위 브랜드가 된 JBY 키우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지난해 패션 매출에서 34% 수준이었던 PB 매출 비중을 50%까지 높일 계획이다.이런 상황에서 홈쇼핑 시장에서 경쟁하는 SK스토아도 패션 PB시장을 방치할 수 없었다. 16일 출시한 헬렌카렌은 10만~20만원대 가격의 캐주얼 의류가 주력 상품이다. 20만원이 넘는 백화점 제품과 10만원대 이하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비자를 위해 만들었다.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