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제 해도 '대출 족쇄'…서민엔 '그림의 떡'
강남 소형 분양가도 9억 넘을 듯
중도금대출 원칙적으로 불가능
현금 7억원 이상 있어야 청약
순자산 10억 넘는 가구 6.1%
19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강남 등 서울 주요 단지 분양가는 분양가 상한제 도입 이후에도 대부분 9억원을 넘길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신반포3차·경남 재건축조합은 자체 계산 결과 상한제를 적용할 때 일반 분양가가 3.3㎡당 4000만원대로 책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용면적 59㎡ 아파트도 분양가가 10억원을 넘어선다.
분양가 상한제는 땅값과 건축비를 더한 금액 이하로 분양가를 제한한다. 국토교통부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70~80%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분양한 서초구 방배그랑자이는 3.3㎡당 평균 4687만원에 분양했다. 전용 84㎡ 평균 분양가는 15억9000만원이다. 정부 계산대로 상한제를 적용할 때 분양가가 주변의 70% 수준으로 낮아져도 11억원을 넘긴다. 6년 전 상한제를 적용받은 대치동 래미안팰리스는 2013년 10월 3.3㎡당 3200만원에 분양했다. 이때도 전용면적 84㎡ 분양가격이 10억~11억원에 달했다.
분양가가 9억원을 넘으면 평범한 중산층·서민의 ‘내집 마련’은 힘겨워진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보증이 나오지 않아 중도금대출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분양가의 80%를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는 만큼 최소 7억원 이상 현금이 필요하다.
정부가 로또청약을 막겠다며 ‘5년 거주’를 의무화할 예정이어서 전세금을 활용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다자녀·신혼부부·노부모부양 등 특별공급 물량도 없다. 청약 시장이 현금부자에게 여전히 유리한 구조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10억원 이상 순자산을 보유한 가구는 전체 가구의 6.1%(2018년 3월 기준)에 불과하다. 조은상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대출 규제가 까다롭지 않을 때는 여건이 안 되는 사람도 다소 무리해서라도 서울 유망 입지의 아파트 청약에 나설 수 있었다”며 “지금은 대출이 막힌 데다 거주 요건까지 생기면서 돈 많은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조사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올해 서울의 분양가 9억원 초과 아파트는 전체 분양 단지 224곳 중 29.5%(66곳)에 달했다. 2년 전(15.2%)과 비교해 14.3%포인트 늘었다. 9억원 초과 분양 단지는 동대문구(39곳) 광진구(39곳) 은평구(12곳) 등 비강남에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면 계약 등 불법 청약 우려도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 재건축 조합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조합원이 얻을 이익이 서민 주거 안정에 쓰이기는커녕 현금부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이유에서다. 강남구의 한 재건축 조합원은 “수십 년간 월급 차곡차곡 모아 내 집을 마련해서 10여 년 만에 재건축하는데 분양가 상한제로 분담금만 가구당 1억원 이상 늘어나게 생겼다”고 주장했다. 서초구의 한 재건축조합장은 “이익을 골고루 나누자는 심정으로 일반 분양가를 조합원 분양가와 3.3㎡당 200만원밖에 차이 나지 않게 정했는데 상한제로 조합원 분양가가 오히려 높아지게 생겼다”고 했다.
시장에선 가점이 높은 무주택자와 청약 자격이 안 되는 현금부자들이 이면 계약을 맺고 불법적인 형태로 ‘로또 단지’를 공략하는 등의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자산가 중에 일부러 상가 위주로 투자하거나 비싼 전셋집을 유지하면서 로또 청약을 노리는 사람이 상당수”라고 했다. 심 교수는 “상한제 도입으로 분양가가 낮아지더라도 일반 청약자가 대출 없이 현금 수억원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금부자에게 두세 배 시세 차익이 보장되는 로또 아파트가 돌아가는 부작용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길성/이유정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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