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김범준 기자 egkang@hankyung.com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김범준 기자 egkang@hankyung.com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30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과 관련해 파업을 가결했다. 2012년 이후 8년 연속 노조가 파업에 나서며 연례행사가 됐다.

현대차 노조는 이날 전체 조합원 5만293명을 대상으로 쟁의행위(파업) 찬반 투표를 한 결과, 찬성이 절반을 넘었다고 밝혔다.

노조는 여름휴가를 보낸 뒤 8월 말부터 ‘하투(夏鬪·여름 투쟁)’에 돌입한다는 방침으로 전해졌다. 노조 집행부 교체 등을 감안해 추석(9월 13일) 전 타결을 목표로 잡았다.

현대차 노조의 요구사항은 성과금 지급과 정년 연장, 고소 취하, 해고자 복귀 등이다. 기본급을 15만1526원(전년 대비 6.8%) 인상하고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30%를 성과금으로 내놓으라 주장하고 있다.

현대차 직원 평균 연봉이 9200만원에 달하지만, 최저임금에는 미달된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이러한 상황의 책임은 고용노동부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부가 격월로 지급하는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최저임금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 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 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는 2개월마다 지급하던 상여금을 매달 지급, 최저임금에 포함되도록 해 최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상여금은 현행과 같이 지급하고 기본급을 인상해 최저임금에 맞춰달라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정년을 국민연금 수령 직전 연도(64세)로 연장할 것도 요구하고 나섰다. 현대차 생산직 직원의 40% 이상은 만 60세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50대다. 올해 1500여 명이 정년을 맞이하고 2021년부터는 매년 2500여 명이 회사를 떠나는데, 이를 늦추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해고자의 복직, 노조원 대상 고소·고발 철회도 요구했다. 정규직 1만명 추가 채용, 납품단가 인하 근절 등의 ‘특별요구’도 담았다.

현대차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대차 직원 평균 연봉은 9200만원으로, 이미 도요타(7800만원), 폭스바겐(8300만원) 등 경쟁사보다 높다. 현대차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는 지난해 14.8%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 8.2%보다 높은 것은 물론, 도요타(5.9%)보다도 2.5배나 많다.

연봉 대비 노동생산성은 1.2배에 그친다. 노동자 1명이 1년 동안 일해 9200만원을 가져가면 회사에는 1840만원만 남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기본급 인상과 성과급 지급 등이 이뤄지면 회사가 연구개발 등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용할 자금은 사라진다.
현대차 노조가 30일 조합원 투표에서 파업을 가결했다.
현대차 노조가 30일 조합원 투표에서 파업을 가결했다.
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올해 2분기 현대차의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3% 감소한 110만4916대를 기록했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 영향으로 해외 판매량이 10.1% 줄었다. 세계 시장 자체가 축소된 탓에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은 구조조정에 나섰다. 현대차도 이에 동참해야 할 처지인데, 반대로 정년을 연장하고 임금을 늘리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요구안을 거절당한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국내 생산 물량을 해외 공장으로 돌리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만 단체협약 탓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단체협약에는 차량 양산 시 생산량과 투입인력을 노조와 합의해 정해야 하며, 해외에서 생산한 차를 국내에 들여오려면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되면 최근 회복세를 보이던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합리적 가격의 신차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파업으로 생산이 멈춘 차량을 주문할 만큼 현지 소비자들의 인내심이 많지 않다”며 “현대·기아차가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에게 시장을 내어주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