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중독 경제’에서 벗어나겠다며 33세 왕세자를 중심으로 정부가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곳곳에서 기업들이 휘청거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1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사우디 기업 여러 곳과 개인 소매상 등이 영업이익 부진과 투자 감소 등을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의 상업 항구도시 제다 등에선 가개 곳곳이 문을 닫았다. 익명을 전제로 FT와 인터뷰한 한 사우디 변호사는 “작년 이래 폐업 사례가 늘었다”며 “지난 18개월간 폐업 관련 일을 50여 건 이상 다뤘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폐업은 대부분 업황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필요한 현금을 막지 못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사우디 시장에선 이런 사례가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 발표 이후 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6년 석유에만 크게 의존하는 사우디 경제 구조를 바꾸겠다며 경제개발계획인 비전2030을 발표했다. GDP상 민간부문 비중을 기존 40%에서 2030년까지 65%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내년까지는 비정부부문 일자리를 45만개 만들고 기존 12.5%인 실업률을 9%로 내릴 계획이다.

사우디 정부는 당초 비전2030을 실행하기 위해 금융·군수·물류·관광 등 각종 민간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크지 않은 모습이다. 일반 가구는 소비 지출이 줄고, 기업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요 경제지표 추이
사우디아라비아 주요 경제지표 추이
그간 사우디는 가구별 소비지출이 확 줄었다. 작년 1월부터 5% 세율로 부가세를 도입하고 특별소비세 적용 품목을 늘리면서부터다. 2016년부터 정부가 연료·전기·수도료 보조금을 삭감한 것도 민간에 타격을 줬다. 사우디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 관련 세금을 늘리면서 외국인들의 소비도 줄었다.

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출은 줄어들고 있는데 운영 비용은 늘어나서다. 외국인 노동자 세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올랐다. 사우디 민간부문 일자리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한다. 이에 따라 비용이 확 늘고 영업이익은 줄었다. FT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가 2014년 유가 하락 이후 사우디의 국가재정 수입이 줄어들자 일부 민간주체와 정부간 계약건에 대해 대금 지급을 미룬 건도 여럿 있다.

여기에다 사우디 기업이 투자를 줄이는 이유는 또 있다. 정부가 경제 개혁을 명분으로 기업들 단속에 나서고 있어서다. 2017년엔 사우디 정부가 왕자, 기업가 등 재계 인사, 고위급 관료 등 총 300여명을 기습체포해 리야드의 리츠칼튼 호텔에 구금한 뒤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기업가들이 뇌물 등 혐의를 인정하고 정부에 일정 금액을 보내고 나서야 풀려났다. 사우디 정부는 당시 이를 두고 사우디 기업의 부정부패 단속에 나선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선 빈 살만 왕세자 등이 실권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 군기잡기’에 들어갔다는 해석을 내놨다. FT에 따르면 이후 사우디 기업 다수가 추가 투자 대신 현금보유분을 늘리거나 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사우디 시장에선 사우디 정부가 경제개혁의 큰 축이 되어야 하는 민간부문을 경원시하면서 개혁 계획이 잘 추진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국가기업 민영화, 민간 투자 지원 등으로 민간 산업을 키우겠다고 한 것과 달리 기업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사우디 기업가는 “왕세자는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중국이나 한국에서처럼 경제를 확 발전시킬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며 “정부가 민간부문을 부정부패 주축이자 정부 기금에 기생해 이익을 내는 주체로 지목하면서 민간부문 투자 심리가 약화됐다”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의 대규모 국부펀드도 기업 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대규모 공공투자펀드(PIF)를 굴리면서 해외 투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사우디 민간부문에 대한 투자가 뒷전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우디 정부는 최근 기업들간 나오는 불만 등은 경제개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일 뿐이란 입장이다. 모함마드 알자단 사우디 재무장관은 FT에 “정부와 민간부문 간 의견 합일이 잘 돼 있다”며 “대규모 경제개혁을 하는 과정에선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없고, 기업은 새로운 현실에 잘 적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FT는 “개혁 과정에서 정부 눈에 든 기업 일부는 이전보다 훨씬 좋은 계약을 따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며 “이같이 기업들의 희비가 갈리는 상황에서 빈 살만 왕세자가 민간부문을 잘 키워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