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와 5조3000억원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진행 중인 미국계 사모펀드(PEF) 론스타가 중재재판부에 추가 증거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통보했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정부의 개입 정황을 찾았다는 이유에서다. 새로운 증거로 인정될 경우 한국 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2016년 7월 ISD 심리절차 종료 후 판정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증거 자료가 제출되면서 최종 결과는 오는 9월 이후에나 나올 전망이다.
ISD 판정 코 앞에서…또 韓정부에 시비 건 론스타
론스타, ISD 종료 전 새 증거 제출

15일 국제중재업계에 따르면 론스타는 최근 ISD 중재재판부와 한국 정부에 추가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통보했다. 지난해 12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열린 하나금융지주와의 국제상공회의소(ICC) 손해배상소송 비공개 심리에서 하나금융 측으로부터 한국 정부에 불리한 증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국내 로펌의 한 변호사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높은 가격에 살 경우 정부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한 부분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론스타 측이 이 발언을 “정부가 하나금융에 압력을 행사해 가격을 낮추도록 한 증거”라고 해석했다는 얘기다. 일반 소송과 달리 ISD에선 증거자료도 재판부 및 중재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통상 집중 심리 기간에 모든 증거를 낸다. “심리가 끝난 상태에서 증거를 사후적으로 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는 게 국제중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론스타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론스타는 2016년 8월 ICC에 하나금융을 상대로 1조5000억원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ISD에 패소할 것에 대비해 하나금융에도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이라는 분석이 많다. 두 소송 모두 대상만 다를 뿐 ‘외환은행 매각에 따른 손해배상’이라는 같은 사건이어서 ICC 결과를 바탕으로 ISD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국제중재업계에선 ICC 결과는 다음달, ISD 결과는 9월 이후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1조원 안팎으로 ISD 배상 규모를 줄이면 사실상 승소한 것이라는 게 국제중재 변호사들의 견해다.

“정부 압박” vs “당시 사회 분위기일 뿐”

론스타가 ISD와 ICC 소송을 제기한 배경엔 외환은행 매각 지연뿐만 아니라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 논란도 있었다.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00억원에 인수한 론스타는 2010년 11월 하나금융과 매각 계약을 맺었다. 초기 하나금융의 인수 예정 가격은 외환은행 지분 51.02%(3억2904만 주)에 4조6888억원이었다. 하지만 실제 인수가격은 7700억원 줄어든 3조9156억원이었다.

론스타는 당시 가격 인하 배후에 정부가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당시 가격 협상 과정에서 하나금융 관계자가 “가격이 적정해야 정부 승인을 받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문제 삼으며 “사실상 정부가 가격 인하 압력을 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외환은행 인수에 관여한 하나금융 관계자는 “가격이 높으면 정부가 승인을 안 해줄 것이라고 말한 적 없다”고 했다. 그는 “당시 외국 투자자가 천문학적인 돈을 회수하는 ‘먹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상당했다”며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전해준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