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신성일이 오늘 새벽 2시 30분 향년 81살로 별세했다.(사진=DB)

'국민배우' 신성일이 오늘 새벽 2시 30분 향년 81살로 별세했다.

신성일 측 관계자는 "한국영화배우협회 신성일 명예 이사장이 오늘 새벽 2시 반 폐암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오늘(4일) 새벽 향년 81세로 타계한 신성일은 한국 영화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한 '영원한 스타'였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신성일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와 운동 등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한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무작정 상경해 서울대 상대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갔고, 3천여 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당시 신상옥 감독이 세운 신필름 전속 연기자 됐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은 김기덕 감독 '맨발의 청춘'(1964).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로 당대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신성일은 인기 최절정기인 그해 11월 워커힐호텔에서 엄앵란과 결혼했다. 4천 명의 인파가 몰린 두 사람의 '세기의 결혼식'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신성일은 나중에 외도와 사업실패 등으로 40년 넘게 별거 상태로 지냈지만, 힘든 시기에는 서로 힘이 돼 주었다. 신성일의 전성기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 됐다.

신성일은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위험한 청춘'(1966), '불타는 청춘'(1966)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신성일은 1964년부터 1971년까지 8년간 한국영화 개봉작 1천194편 중 324편에 그가 등장했다.

신성일은 무력과 좌절에 빠진 지식인을 연기한 '별들의 고향'(1974)을 비롯해 '겨울여자'(1977), '장남'(1984), '길소뜸'(1985) 등 70~80년대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다.

2005년에는 '태풍'에 특별 출연했고, 2013년에는 '망각 속의 정사'(1993) 이후 20년 만에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 주연을 맡으며 연기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성일은 총 5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정치에도 눈을 돌린 신성일은 11대(1981), 15대(1996) 총선에서 거푸 낙선한 끝에 2000년 16대 총선 때 대구 동구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고인의 본명은 강신영이었으나 고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신성일'을 주로 사용했으며, 이후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앞두고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하지만 신성일은 2003년에는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와 관련해 광고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또한 신성일은 1971년엔 '연애교실'로 감독에 입문했고, 1989년에는 성일시네마트를 설립해 제작자로도 활동했습니다.

70대에 건강을 잘 챙기던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회고전을 비롯해 올해 10월 열린 부산영화제에도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다.

하지만 한달여 만에 '국민배우' 신성일이 오늘 새벽 2시 30분 향년 81살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인 엄앵란과 아들 강석현(51)씨, 딸 강경아(53)씨, 강수화(48)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조문은 이날 오후 1시부터 가능하며 발인은 6일 오전이다. 장지는 경북 영천에 마련된다.

이준현 한경닷컴 연예·이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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