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늘어지는 재판, 집행되지 않는 판결
사회가 있는 곳에 분쟁이 있다. 분쟁에도 순기능이 있겠지만 적절히 해결되지 않는 분쟁은 공동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분쟁의 해결이 적나라한 폭력, 금력,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도리에 맞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재판 제도다. 분쟁이 평화적, 종국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확정된 재판에서 정의로운 질서라고 선언된 상태는 반드시 회복되고 실현돼야 한다. 헌법상 재판 제도의 존재는 이런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것이다.

법을 공부하며 처음 배우는 것 중 하나가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격언이다. 이것은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말로 표현되는 근대 시민사회로의 전환을 추동한 중요한 원칙이다.

계약이 지켜진다는 보장이 있으면 인간은 자기 삶을 자율적으로 계획하고 실현해나갈 수 있다. 행복추구권은 헌법의 근본적 가치 중 하나지만, 계약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이것은 공염불에 그치기 쉽다. 재판 제도는 계약이 지켜질 것을 보장한다.

유명한 햄릿의 독백에서 법의 지연(law’s delay)은 삶의 고통 중 하나로 등장한다. 법을 통해 정의로운 상태를 회복하는 것은 늘 사후적으로 이뤄지며 그나마도 긴 절차를 거친다. 그동안 겪는 마음의 고통은 실로 인간의 존재에 상흔을 남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판결은 세계적으로도 빠르게 선고되는 편이다. 다만 이것은 제1심 판결이 그렇다는 것이고 상대방이 끝까지 다툰다면 대법원 판결을 거쳐 실제 집행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다. 많은 선진국에서 1심 판결이 선고되기까지는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지만, 대부분 한 번의 판결로 분쟁이 해결되며 판결은 실현된다. 집행을 거쳐 분쟁이 최종적으로 끝날 때까지의 전체 소요시간을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의 재판은 빠르지 않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장기간 마음고생을 해서 어렵게 승소했을 때 누구나 그것으로 분쟁이 끝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항소한 뒤 이전의 주장을 뒤집고 새로운 주장을 내세우며 새로운 증거 신청으로 시간을 끌면 당사자는 속이 끓고 애가 탄다. 상대방이 대법원까지 상고하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에는 잊지 못할 고통이 남는다. 재판은 한 번으로 마쳐야 한다. 거의 무제한 항소를 허용하는 것은 승소한 당사자에게 부당한 이중 위험을 강요하는 것이다.

대법원까지 가는 긴 소송 끝에 확정판결을 받아도 판결대로 집행된다는 보장이 없다. 상대방에게 재산이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상대방은 고급 아파트에 살고 수시로 해외여행을 즐기며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데도 판결은 집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고통 역시 형언하기 어렵다.

실현되지 않는 판결은 쓸모없는 것이며 법에 대한 불신만 일으킨다. 좌절한 국민은 결국 실력에 기대게 된다. 이 경우 실력이란 돈과 권력이다. 자기에게 돈과 권력이 없다면 연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사면이나 가석방을 상품으로 삼는 시장이 존재한다는 풍문에 이르러서는 끔찍하기까지 하다. 형사재판까지도 판결대로 집행되지 않아서 돈 있고 힘 있는 자가 브로커를 통해 사면과 가석방을 누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유전무죄, 유권무죄 아닌가?

훈민정음 해례본 안동본(간송본)은 국보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같은 판본의 상주본을 놓고 점유자와 원소유자 간에 소유권 분쟁이 벌어졌다. 대법원까지 가는 다툼 끝에 2011년 점유자가 원소유자에게 상주본을 인도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점유자가 판결에 따르지 않는 사이에 원소유자는 사망했으며 상주본은 국가에 기증됐다. 국가가 소유자인 국보급 문화재를 패소한 당사자가 숨겨놓고 있는데 판결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숨겨놓은 상주본은 화재로 일부 훼손되기까지 했다.

매달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는데 막상 패소한 당사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양육비를 받을 때마다 상대방에게 은혜를 구걸하는 듯한 모습이 된다. 양육비이행관리원 같은 기관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계약은 지켜져야 하며 판결은 집행돼야 한다. 사법개혁을 논하는 마당에 많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이런 중요한 문제들도 꼭 해결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