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직간접적 통제를 받는 공기업들이 단기 일자리 창출에 여념이 없다. ‘고용 파국’을 막겠다며 정부가 ‘3개월 내 채용’이라는 지침까지 내리자 경쟁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 채용실적을 반영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엄포에 인력수요나 경영여건은 무시되기 일쑤다.

공기업들로선 정부에 호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겠지만 지금 양상은 상식을 크게 벗어나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은 ‘청년 기술평가 체험단’으로 뽑은 2개월짜리 알바(550명)가 정규직의 40%에 달한다. 1500여 명의 ‘단기 알바’를 지난달 뽑은 한전KPS도 239명을 추가 채용키로 했다. 전날 저녁 정부에서 ‘채용 압박’ 공문이 오면 다음날 오전에 날림으로 목표를 상향조정해 보고하는 일도 벌어진다는 전언이다.

적자 늪에 허덕이는 공기업들까지 ‘묻지마’식 채용에 뛰어들었다. 한국전력은 최근 1년간 적자가 9400억원에 달하는데도 단기 일자리 800여 개를 만들겠다고 손을 들었다. 올해 이익이 지난해의 20%로 쪼그라드는 한전 발전자회사 5곳도 청소 용역 등 허드렛일에 투입할 1100여 명을 뽑는다. LH 한국도로공사 등 국토교통부 산하 23개 공기업도 연내 1만2500명의 대규모 채용구상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가한 압박이 강요죄나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정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KOTRA는 기재부의 세 차례 공문과 ‘성에 차지 않는다’는 질책에 ‘0명’으로 보고했던 단기채용 인원을 112명까지 늘렸다. 개별 여건을 무시한 이런 움직임은 공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주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은 국가의 소중한 공적 자산인 공기업의 가치훼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대규모 적자에다 최근 ‘고용 세습’ 사태에 휘말린 서울교통공사에서는 공채합격자 30여 명이 입사를 포기했다. 방만경영 비용이 근무여건 악화로 돌아올 게 뻔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아무리 고육책이라 해도 합리적인 틀 안에서 진행해야 마땅하다. “정부 요청이 있더라도 무작정 채용은 민간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배임행위”라는 지적에 공기업들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공공일자리 5만9000개 창출을 포함한 여덟 번째 일자리 대책을 또 내놓은 정부도 공기업을 ‘배임 논란’으로 몰아넣은 행태를 즉시 중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