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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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문제가 된다는 말씀이죠?”

지난 14일 프랑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보좌진의 우려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상업운행 중인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인 ‘넥쏘’ 시승을 놓고 당시 실무진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지난 7월 초 인도 정상외교 때 삼성전자의 노이다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데 이어 또다시 대통령이 대기업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자칫 다른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이를 일축하고 에펠탑이 한눈에 보이는 파리의 수소전기차 충전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7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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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제1의 세일즈맨’

‘파리 수소차 사건’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정상외교의 성과를 극대화함으로써 국민·국익외교라는 문재인 정부가 세운 원칙을 적극 실현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소전기차 탑승 등 예정에 없던 즉흥 일정이 가능한 건 청와대 의사결정 구조가 이전에 비해 상당히 빠르고, 수평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중심인 파리에서, 실제 운행 중인 수소전기차에 탑승함으로써 문 대통령은 한국형 미래 자동차 기술의 세계 무대 도전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제1의 세일즈맨’으로 나서고, 정상 간의 만남을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 최근 선진국들의 핵심 외교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뭐가 문제죠?" 대통령 한마디가 한국형 친환경車 도전길 넓혔다
지난해 12월 중국 국빈방문 때 충칭에 있는 현대차 현지 공장을 찾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다. 이미 베이징에서 현대차 사업장을 방문한 만큼 한 국가에서 같은 기업을 두 번이나 찾는 것은 전례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문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순방을 계기로 열리는 기업 행사는 대통령 참석 여부에 따라 현지 반응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고 했다.

대통령 순방의 경제효과는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 3월 문 대통령의 공식 방문을 계기로 석유·가스·정유 등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에 250억달러(약 26조원) 규모의 사업권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순방에 따른 경제효과가 구체적인 수치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방문의 감사표시로 어느 정도 ‘립서비스’ 성격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양국 기업이 협상 테이블에 앉고, 정부 의사결정권자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 자체만으로 계약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는 대통령 순방의 경제외교 최대 성과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얼어붙었던 한·중 경제관계 복원을 꼽는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의 순방 후 “양국 간 정상적인 경제관계가 어느 정도 복원됐다”며 “이런 효과가 한국 경제성장률을 0.2% 포인트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문 대통령이 해외 순방 시 한국 기업과 제품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세일즈’ 외교도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는다는 평가도 있다.

대통령 한 명에 모든 부담이 집중

대통령의 해외순방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외교부에 따르면 올해 총리순방과 국빈영접을 포함한 2018년 대통령의 정상외교 예산은 지난해와 같은 196억800만원이다. 올해 예정된 대통령의 10차례 순방을 단순 평균하면 한 번에 19억여원의 비용을 쓰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 비용은 이를 훨씬 웃돈다. 경호와 의전 분야 선발대 20여 명과 현지 대사관 및 영사관 홍보문화원 직원 50여 명의 체류비용도 만만치 않다.

비용은 대통령의 순방이 국빈방문이냐 공식방문이냐에 따라 다르다. 수행 인원과 체류 기간, 현지 문화행사 유무도 영향을 끼친다.

정상외교의 가장 큰 리스크는 대통령에게 모든 부담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청와대 부속실 관계자는 “일정 하나하나를 경중으로 따질 수 없는 데다 대통령이 모든 행사 때마다 수백 페이지의 자료를 밤을 새워가며 꼼꼼히 읽는 스타일”이라며 “일정 하나만 줄어도 대통령의 목소리와 안색이 바뀔 정도”라고 전했다. 기존 순방에선 하루 10여 개씩의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한다.

지난 6월 러시아 순방을 끝낸 직후 몸살에 걸려 이틀 연가를 낸 것을 계기로 순방 일정 재검토와 총리의 대리순방 등 안건이 청와대 내부에서 적극 개진됐다. 이에 따라 총리를 비롯해 국회와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광폭 외교행보’ 이어가는 문 대통령

정상외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대통령의 순방 횟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전두환 정부 등 군사정부 시절엔 초청 국가가 적은 데다 수교를 맺은 국가도 한정돼 있어 대통령의 해외순방은 미국, 일본 등 우방을 찾아가는 정도에 그쳤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순방의 폭과 횟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5회를 포함해 집권 5년간 27회에 걸쳐 57개국에서 정상외교를 수행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기업인 출신답게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전통적인 우방국 방문에 치중돼 있던 데서 벗어나 중동,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를 누비며 총 49회, 88개국을 순방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상외교 횟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약 1년4개월여 만에 총 14차례(16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북방외교를 넘어선 신북방정책의 일환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고, 아세안과 인도라는 새로운 경제 영토를 개척하기 위해 ‘남방외교’에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대통령 방문을 요청하는 국가들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손성태/박재원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