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청와대의 '미션 임파서블' 정치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빨을 10개나 뽑을 정도의 격무였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청와대 직원들의 삶도 바쁘기는 매한가지다. 일과의 시작은 대체로 새벽 5시 반부터다. 국내외에서 발생한 각종 정보를 정리하고, 이 중에서 쓸모 있는 것들을 가려 뽑아 정책을 기획·개발한다. 청와대에 파견된 ‘늘공(늘 공무원)’과 ‘어공(어쩌다 공무원)’ 대부분이 치아 한두 개쯤 흔들리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요즘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대중인기영합주의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도 ‘노무현 청와대’에서 정책실장으로 2년을 보냈다. 김 위원장 역시 ‘문재인 비서실장’처럼 분초를 아껴가며 일을 했겠지만 그의 청와대 시절에 대한 평가는 다소 부정적이다.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노무현 정부 때 국가 개입을 줄여보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격무’가 오히려 나라엔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의 날 선 비판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꽤 회자되는 모양이다. 박용진 의원은 “국가주의 선동이 선을 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대표 후보로 나선 김진표 의원은 “그런 경고성 발언도 필요하다”며 다른 평가를 내렸다.

20대 후반기 국회 수장으로 선출된 6선의 문희상 의장도 김 의원과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달 취임식에서 “정치의 중심을 청와대에서 국회로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부 수장으로서 원론적인 발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여야 중진 의원들 사이에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우국충정”이라는 평이 나왔다. 문 의장은 ‘김대중 문하생’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해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정현 의원(무소속)의 얘기도 귀 기울일 만하다. 국회 말단 보좌진에서 시작해 청와대 정무·홍보수석, 새누리당(현 한국당) 대표까지 지낸 그는 권력의 민낯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이 의원은 박근혜 정부 실패의 최대 원인으로 ‘과로(過勞) 청와대’를 꼽았다. 청와대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대학교수 A씨는 청와대 초청으로 대통령 앞에서 강연했다. 인구학적 관점에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강연이었는데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6분이었다. 나중에 그가 들은 말은 이랬다. “대통령이 얼마나 바쁜 분인지 아시죠. 6분이면 엄청나게 귀한 시간입니다.” ‘6분 프레젠테이션(PT)’은 청와대 중심의 정치가 물리적으로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과로를 무조건 비판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청와대 단독의 정치는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사회 변화를 청와대가 모두 따라잡기란 불가능하다.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대입제도 개편만 해도 그렇다. 교육부 관료들은 공론화위원회에 결정을 떠넘기고, 위원회가 죽도 밥도 아닌 결론을 내리자 이목이 청와대로 쏠리고 있다. 이제라도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만 외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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