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신료 원가, 보호해야 할 영업비밀이다
지난 12일 대법원은 참여연대가 정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통신요금 원가 산정 근거자료 일부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로 인해 시민들은 통신비가 인하될 것으로 기대하며 환영하는 분위기인 듯하다. 반면 전문가들은 한 기업의 원가산정 근거자료를 공개하라는 것은 해당 기업의 영업비밀을 공개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천문학적인 경영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이동통신사들은 해외 글로벌 기업들과 생존을 건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대법원의 판결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2011년 참여연대가 통신사를 상대로 통신요금 원가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소송을 낸 후 7년 만의 일이다. 참여연대의 소송은 이동통신사들의 요금인하가 주 목적이었다. 요금인하를 목적으로 시민단체가 기업의 영업비밀 공개를 요구한 것이고,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이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물론 대법원은 이동통신서비스가 전파 및 주파수라는 공적 자원을 이용해 제공되는 것인 만큼 국가의 감독 및 규제가 적절하게 행사되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공적 자원이란 용어 자체가 매우 모호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가 구축한 기반시설을 이용하는 모든 기업이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논리로 비화할 수 있는 판결이 돼 버렸다. 결국 이번 원가자료 공개 판결은 당사자인 이동통신사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기업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격인하 또는 요금인하에 민심이 쏠리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여론을 등에 업고자 하는 집단에 이 카드는 매우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번 원가자료 공개가 요금인하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는 물론 사업자들도 매우 회의적이라는 점이다. 즉, 원가공개와 요금인하는 별개의 과제라는 얘기다. 이는 원가는 공개돼도 의도한 요금인하는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와 사회가 통신요금 인하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과 같은 신성장동력을 찾고자 하는 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한 채 대중의 인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판결은 통신요금은 인하하도록 하지 못하면서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영업비밀만 글로벌 시장에 노출시키는 우를 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업의 영업비밀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주는 물론 근로자, 채권자, 더 나아가 우리 국민 모두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재산인 것이다. 정부는 2006년 해외로 유출되는 국내 기업들의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일명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영업비밀은 법적으로 보호받기 힘든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일부를 핵심기술로 지정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이 법률을 제정한 것이다. 이런 영업비밀이 특정 이익집단의 인기영합주의에 희생돼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는 서둘러 이에 대한 후속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