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뱃고동 울리는 문재인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대우조선해양이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건조한 쇄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야말 5호’ 조타실에서 뱃고동을 울리고 있다. 거제=청와대사진기자단
< 뱃고동 울리는 문재인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대우조선해양이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건조한 쇄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야말 5호’ 조타실에서 뱃고동을 울리고 있다. 거제=청와대사진기자단
“금융이 빠지면 일이 안 됩니다.”

4일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격려발언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면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향해 건넨 말이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고 최 위원장도 고개를 숙였다. 이날 거제도 방문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정책 결정라인이 총출동했다. 이날 대우조선 주가는 12.5% 폭등한 1만7200원에 마감했다.

◆채권단 “구조조정 후퇴 안돼”

산업은행 등 대우조선 채권단 내부에선 문 대통령의 이날 방문에 대해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회사 정상화를 위해서는 인력 감축 등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정부가 지켜줄 것’이라는 식의 기대가 커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대통령이 격려했다는 것만으로도 구조조정에 대한 경각심이 흐트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대우조선이 올 연말까지 1700명을 줄여야 하는 자구안을 제대로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말 1만200명인 인력을 올 상반기 9000명으로 줄이고, 연말까지는 추가로 500명을 감축해야 한다.

대우조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동조선과 STX조선은 다음달 중순까지 외부 컨설팅을 통해 산업 진단을 받는다. 정부는 기존 회계법인 실사 결과와 산업경쟁력 컨설팅 결과를 함께 살펴본 뒤 청산 또는 존속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올해 상반기 중 향방에 대한 결론을 내놓을 계획이다. 또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지금은 격려보다는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한 압박이 필요하다”면서도 “문 대통령도 현장에서 구조조정과 혁신을 강조한 만큼 원칙이 지켜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거제 찾은 문재인 대통령 "조선업 살릴테니 구조조정·혁신 나서달라"
◆업계 “올해 보릿고개 넘어야”

대우조선이 정부로부터 ‘확실히 살린다’는 신호를 받은 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조직 축소와 임원 축소 등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삼성중공업은 이날 임원 30%, 전체 팀의 25%를 줄이는 강도 높은 자구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연말 조직 개편으로 임원은 기존 72명에서 50명으로 22명 줄었고, 89개 팀도 67개로 조정했다. 회사 관계자는 “기능 일원화와 통합, 조직 축소와 (현업)전진 배치를 최우선 기준으로 조직을 정비했다”고 말했다. 남준우 사장은 이날 신년사에서 “일감을 제때 확보하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원가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계변경을 최소화하고 자재비용도 절감할 방안을 찾기로 했다. 삼성중공업은 작년과 올해 7300억원의 영업손실을 예고하며 1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준비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2조원가량 줄어든 7조9870억원으로 잡았다고 공시했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60%나 줄어든 수준이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이날 신년사에서 “올해는 지금까지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엄중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물량은 더욱 줄어 힘든 한 해를 보내야 하고, 특히 해양플랜트 사업은 몇 달 후면 일감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며 비상한 각오를 주문했다. 해양플랜트는 오는 6월 일감이 바닥나 1500여 명의 유휴인력이 발생한다. 현대중공업도 올해 적자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1분기 중 1조2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예상되는 사상 최악의 ‘일감절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회사를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바꿔야 한다”며 “대규모 인원 감축과 조직 축소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지은/안대규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