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대문 안에 신축되는 대형 오피스빌딩들이 건물 안팎에 박물관을 갖추고 있다. 터파기 과정에서 발굴된 집터 등 유물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연면적 6611㎡ 규모의 박물관급 유물 전시공간을 조성한 곳도 나왔다. 디벨로퍼들이 문화재가 나오면 감추기 급급했던 과거와 달리 유물을 활용해 빌딩 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주변 인사동 광화문 일대 관광명소와 자연스럽게 연계되면서 도심 상권을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역사' 품고 '몸값' 높인 사대문 안 오피스빌딩
오피스빌딩 개발 새 트렌드 ‘유물 보존’

내년 상반기 완공 예정인 공평동 센트로폴리스(공평1·2·4지구)는 건물 지하 1층 전체에 도시정비사업 중 발견된 문화재를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유구(遺構) 역사문화전시관’(가칭)을 마련할 계획이다. 서울에서 도시환경정비사업 과정에 발굴된 매장 문화재를 전면 보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구는 옛날 토목건축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를 말한다. 서울역사박물관 별관으로 활용될 유구 전시관의 규모도 총면적 6611㎡로 서울 최대다. 도심에 있는 KT 신사옥 유구전시관(231㎡), 육의전 박물관(505㎡), 서울시청 내 군기시 유적 전시실(882㎡)보다 압도적으로 크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매장 문화재는 상태가 좋아 시행사와 협의해 보존을 결정했다”며 “조선시대 중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센트로폴리스 부지에선 조선시대 전기로 판정된 주택 터 37개소와 도로 3개소, 청와백자편, 기와편 등이 대량 발굴됐다. 문화재청이 유적에 대해 전면 보존 조치를 결정하자 사업 시행자인 시티코어는 보존 면적만큼 유구 전시관으로 조성해 시에 기부하기로 했다. 시티코어 측은 “유물이 대량으로 나왔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땐 눈앞이 아득했다”며 “유물을 건물 가치를 높이는 자산으로 활용하는 역발상 전략을 구사키로 했다”고 말했다.

센트로폴리스는 건물이 지어지는 지역과 어울리는 디자인을 도입해 건물 가치를 높이기로 했다. 건물 외관에 우리 전통 문양인 격자무늬를 재해석한 디자인을 접목했고 건물 하단에는 한옥의 기단부를 도입했다. 시티코어 관계자는 “센트로폴리스가 ‘도시박물관’이란 별칭을 얻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역사성을 부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재 보존+수익성

사대문 안에선 발굴한 문화재를 보존해 전시하는 것이 오피스빌딩 개발의 새 트렌드가 되고 있다. 센트로폴리스에 앞서 개발된 디타워(청진 2·3지구)와 그랑서울(청진 12~16지구), KT 신사옥 등은 발굴된 유구 일부를 신축 건축물의 내외부로 옮겨 보존하거나 지하에 부분 보존했다. KT는 2015년 입주한 신사옥 1층에 16세기 전통 집터와 구들시설을 구현했고, 지하 1층에는 별도 전시관을 마련했다. 같은 해 지어진 디타워 부지 옆에는 조선시대 시전행랑터 위를 투명 강화유리로 덮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랑서울은 조선시대 화약무기인 총통 등을 투명한 유리 위를 걸으면서 볼 수 있게 조성했다.

역사와 결합된 건물은 몸값도 높다. 3.3㎡(평)당 월 임대료가 14만6000원 수준인 그랑서울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서울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싸다. 월 임대료가 13만원 수준인 디타워도 상위 5위권에 들었다. 준공 전 임차인을 미리 모집 중인 센트로폴리스엔 강남 테헤란로의 정보기술(IT) 기업과 여의도 금융회사 등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유물을 보존하는 곳엔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수익성과 유물 보존을 둘 다 잡기 위해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