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제주 올레와 규슈 올레
제주 올레가 생긴 게 2007년이었으니 벌써 10년이다. ‘올레’는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다. 잘 닦인 포장도로가 아니라 아기자기한 소로, 직선 도로가 아니라 곡선으로 굽이도는 길, 잊힌 옛길과 끊어진 길을 다시 잇는 방식으로 제주 해안을 따라 걷는 것이 올레다. 언론인 서명숙 씨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어 조성했다. 걷는 속도도 느리고 여유 있다.

1코스(시흥~광치기)부터 차례로 26개 코스가 생겼다. 총 길이는 425.3㎞. 서울~부산 거리와 비슷하다. 첫해 3000명에 불과하던 방문객이 이제는 연간 100만명을 넘는다. 올레가 생기기 전까지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 연 500만명 이하였는데 2014년 이후 1000만명을 넘었으니 올레의 공헌이 그만큼 컸다. 이를 따라한 지리산 둘레길, 남해 바래길 등도 전국에서 생겨났다.

일본에는 브랜드를 팔았다. 일종의 문화관광 수출이다. 규슈 올레는 제주 올레의 이름부터 코스 조성 과정까지 똑같이 적용한 길이다. 안내 표지도 간세(제주 올레의 상징인 조랑말)와 화살표, 리본을 그대로 사용했다. 리본 색깔만 살짝 다르다. 제주 감귤을 상징하는 주황색 대신 일본인이 좋아하는 다홍색으로 바꿨다. 이미 알려진 관광지보다 마을과 작은 상점을 지나게 하는 코스도 제주 방식이다.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자는 뜻이다.

규슈 올레는 2012년 사가현 다케오 코스부터 시작해 매년 2~4개씩 늘어났다. 지난달까지 19개 코스 222.5㎞가 열렸다. 앞으로 30개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규슈 측은 자문료와 브랜드 로열티로 매년 제주 올레에 100만엔(약 1100만원)을 지급한다. 제주 여성들이 만든 제주 올레의 대표 기념품 ‘간세 인형’을 수입하기도 한다. 2016년 3월까지 규슈 올레를 찾은 탐방객은 22만3000여명. 이 가운데 한국인이 63.3%(14만1500명)나 되니, 한국인 관광객 유치라는 규슈의 1차 목표는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제주 올레는 올해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상표와 콘텐츠를 수출한다. 6월에 2개 코스가 먼저 생기는 모양이다. 캐나다 영국 등 8개국 9개 코스와는 ‘우정의 길’을 맺어 연계 사업을 펼친다.

‘놀멍 쉬멍’(‘놀면서 쉬면서’의 제주어) 즐기는 제주 올레의 소박한 여정이 세계로 뻗어가는 중이다. 오는 22일에는 제주 북서쪽 해안 풍경을 따라 걷는 15-B코스도 열린다. 걷기 좋은 봄날 오후, 쪽빛 바다를 보듬고 낭창낭창한 해안길을 거닐어 보고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