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시선] 고척돔, 부끄러운 '당신이 떠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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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 세 번이면 아웃이 되는 거고, 아웃을 세 번 당하면 공격과 수비를 바꾸는 거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경기가 열린 6일과 7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 관중석에선 아이에게 야구 룰을 가르쳐주는 아빠들의 속삭임이 심심치 않게 들렸다. 하지만 아빠는 한 가지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야구장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경기는 이틀 모두 참패로 끝났다. 관중석도 참상이었다. 곳곳에서 먹다 남은 치킨과 음료수컵 등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좌석 사이에 몰래 숨겨둔 쓰레기도 적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내야 1, 2층은 그나마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3, 4층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야구장 입구에서 나눠준 전단지부터 죽, 캔맥주까지 바닥에 쌓여있었다.
출입구에서 거리가 멀수록 쓰레기는 많아졌다. 단체로 버리고 간 듯 의자 팔걸이에 똑같은 음료수병이 나란히 꽂혀 있는 열도 있었다. 텅 빈 관중석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던 경기장 직원은 “늘 하는 일”이라고 한숨 쉬었다. 관중석에서 나온 쓰레기를 모아 경기장 밖으로 옮기던 직원은 “평소보다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쓰레기 가운데는 외부 음식물도 많았다. 외부 음식물은 반입이 금지돼 있지만 명목에 불과했다. 경기장 앞에서 공공연하게 포장과 배달이 이뤄졌고 시민들은 겉옷과 가방 등에 먹을거리를 숨겨 입장했다.
일부는 소주를 생수병에 옮겨 담기도 했다. 입장과 재입장까지 수만명이 빈번하게 출입했지만 이들을 감시하고 제지할 인력은 출입구당 서너 명에 불과했다.
경기장 밖은 거대한 흡연장이었다. 주요 출입구별로 흡연부스가 마련돼 있었지만 소용 없었다. 공수교대 시간마다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장소에 아랑곳 않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 중년남성은 출입구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시민에게 “여기서 흡연하면 안 된다”고 호통을 쳤지만 그 역시 흡연부스 밖에서 담뱃불을 붙였다. 꽁초는 당연히 바닥에 그대로 버렸다.
야구장 얌체족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처음 열린 프로급 국제대회에서 보여줄 민낯이라기엔 부끄럽다.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이틀 동안 이스라엘, 네덜란드, 대만 관중이 고척돔을 찾았다. 이들에게 기억될 한국의 경기장은 통로마다 쓰레기가 나뒹구는 모습일 것이다.
때문에 질타를 받아야 하는 건 이번 대회에 부진한 대표팀뿐만이 아니다. 1년에 800만명이 야구장을 찾지만 아직도 미성숙한 관람 문화 역시 되돌아 봐야 한다. 롯데 자이언츠가 홈 부산 사직구장 경기에서 쓰레기봉투를 활용한 응원을 펼치는 것처럼 쓰레기 치우기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도록 행정적 고민을 할 필요도 있다.
‘저질 문화’를 이어가지 않으려는 개개인의 노력이 있다면 문화를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진 광화문 촛불집회는 그 답이 될 수 있다. 운집한 100만명의 시민들이 스스로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처음엔 문화적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어느새 시위의 당연한 모습이 됐다. 먼저 나서서 쓰레기를 치우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전체로 ‘전염’ 가능했던 일이다. 야구장에도 이 같은 반가운 ‘전염병’이 필요하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경기가 열린 6일과 7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 관중석에선 아이에게 야구 룰을 가르쳐주는 아빠들의 속삭임이 심심치 않게 들렸다. 하지만 아빠는 한 가지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야구장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경기는 이틀 모두 참패로 끝났다. 관중석도 참상이었다. 곳곳에서 먹다 남은 치킨과 음료수컵 등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좌석 사이에 몰래 숨겨둔 쓰레기도 적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내야 1, 2층은 그나마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3, 4층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야구장 입구에서 나눠준 전단지부터 죽, 캔맥주까지 바닥에 쌓여있었다.
출입구에서 거리가 멀수록 쓰레기는 많아졌다. 단체로 버리고 간 듯 의자 팔걸이에 똑같은 음료수병이 나란히 꽂혀 있는 열도 있었다. 텅 빈 관중석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던 경기장 직원은 “늘 하는 일”이라고 한숨 쉬었다. 관중석에서 나온 쓰레기를 모아 경기장 밖으로 옮기던 직원은 “평소보다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쓰레기 가운데는 외부 음식물도 많았다. 외부 음식물은 반입이 금지돼 있지만 명목에 불과했다. 경기장 앞에서 공공연하게 포장과 배달이 이뤄졌고 시민들은 겉옷과 가방 등에 먹을거리를 숨겨 입장했다.
일부는 소주를 생수병에 옮겨 담기도 했다. 입장과 재입장까지 수만명이 빈번하게 출입했지만 이들을 감시하고 제지할 인력은 출입구당 서너 명에 불과했다.
경기장 밖은 거대한 흡연장이었다. 주요 출입구별로 흡연부스가 마련돼 있었지만 소용 없었다. 공수교대 시간마다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장소에 아랑곳 않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 중년남성은 출입구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시민에게 “여기서 흡연하면 안 된다”고 호통을 쳤지만 그 역시 흡연부스 밖에서 담뱃불을 붙였다. 꽁초는 당연히 바닥에 그대로 버렸다.
야구장 얌체족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처음 열린 프로급 국제대회에서 보여줄 민낯이라기엔 부끄럽다.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이틀 동안 이스라엘, 네덜란드, 대만 관중이 고척돔을 찾았다. 이들에게 기억될 한국의 경기장은 통로마다 쓰레기가 나뒹구는 모습일 것이다.
때문에 질타를 받아야 하는 건 이번 대회에 부진한 대표팀뿐만이 아니다. 1년에 800만명이 야구장을 찾지만 아직도 미성숙한 관람 문화 역시 되돌아 봐야 한다. 롯데 자이언츠가 홈 부산 사직구장 경기에서 쓰레기봉투를 활용한 응원을 펼치는 것처럼 쓰레기 치우기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도록 행정적 고민을 할 필요도 있다.
‘저질 문화’를 이어가지 않으려는 개개인의 노력이 있다면 문화를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진 광화문 촛불집회는 그 답이 될 수 있다. 운집한 100만명의 시민들이 스스로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처음엔 문화적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어느새 시위의 당연한 모습이 됐다. 먼저 나서서 쓰레기를 치우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전체로 ‘전염’ 가능했던 일이다. 야구장에도 이 같은 반가운 ‘전염병’이 필요하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