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길 갑니다” > 이준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맨 오른쪽)이 28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에서 그룹 쇄신안을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새로운 길 갑니다” > 이준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맨 오른쪽)이 28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에서 그룹 쇄신안을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미래전략실 해체를 골자로 28일 발표된 삼성그룹 쇄신안은 다섯 개 문장에 불과했다. 미래전략실 해체, 최지성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 및 팀장 7명의 사임, 계열사 자율경영, 대관(對官)조직 해체 등이 골자다. 모든 계열사가 일정액 이상의 기부금은 이사회 승인 후 집행하기로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핵심 참모들이 사임한다는 점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내용이다. 미래전략실 해체 후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계열사 독립 경영을 하루빨리 정착시키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최순실 사태’를 거치며 커진 정경유착 논란을 단칼에 끊어 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반세기 넘게 삼성을 이끌어 온 미래전략실을 없애고 새로운 길을 걷기로 한 것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새로운 길 가는 삼성

[전면 쇄신 선언한 삼성] 정경유착 논란 단칼에 끊겠다…'다섯 문장' 삼성의 결단
미래전략실은 삼성 경영구조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조직이 계열사 위에 군림한다는 점 때문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 대한 대관업무를 도맡아 2007년 ‘김용철 사태’ 등 삼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있을 때마다 도마에 올랐다.

이날 발표를 통해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 해체는 물론 핵심 업무를 담당했던 최 실장 이하 팀장들의 사표까지 받았다. 수요 사장단 회의 폐지를 공식화해 계열사 사장끼리 대면할 자리가 사라졌고, 대관업무 조직도 없앴다. “나중에 비판이 잦아들면 그룹 컨트롤타워를 부활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확실히 잠재우겠다는 의지다.

재계 관계자는 “발표 전만 해도 ‘대관의 삼성’이 정말 로비 기능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며 “이 부회장이 측근들까지 쳐내는 것을 보며 이번엔 정말로 삼성의 경영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미래전략실 해체는 50년 넘게 삼성의 성공을 이끌어 온 ‘오너-미래전략실-계열사 사장단’의 ‘3각 경영체제’가 허물어진다는 것도 의미한다. 계열사들이 이사회를 중심으로 미래전략실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지가 과제다. 이준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은 “그룹이 해체되는 마당에 앞으로의 계획을 말할 수 없다”며 모든 논의를 계열사 몫으로 돌렸다.

승패는 계열사들의 경영 실적에 달렸다. 2008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해체한 그룹 컨트롤타워가 스마트폰 사업 부진 등으로 2010년 복원된 사례가 있어서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권강현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러지 전공 교수는 “각 계열사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거시적인 안목과 빠른 상황 판단 등 경영 능력이 상당 수준에 올랐다”며 “항상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먼저 갔던 삼성이 이번에도 새로운 실험을 성공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빈자리 우려 목소리도

삼성 정도의 기업 집단이 최소한의 컨트롤타워도 갖추지 않는 것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 97개 계열사를 거느린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도 20여명의 직원이 계열사 간 사업 조율 등의 업무를 한다. 벌써부터 미래전략실의 빈자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삼성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미래전략실은 계열사 간의 조정과 통합을 통해 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고, 최고경영자(CEO)들의 도덕적 해이를 견제해 선진 기업에서도 풀기 어려운 ‘대리인 문제’를 줄이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삼성전자가 부품 계열사에 ‘갑질’을 하는 문제 등이 미래전략실 해체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대표적인 강점으로 꼽히는 미래를 내다보는 과감한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화재의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업 등 미래전략실의 조율을 통해 각 계열사가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벌인 각종 사회공헌활동도 줄어들 수 있다. 삼성 관계자는 “계열사 이사회가 ‘주주 이익과 배치된다’며 접겠다고 결정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계열사 이사회 중심 경영이 과도기적인 역할을 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등을 통해 삼성전자가 전자 계열사, 삼성생명이 금융 계열사, 삼성물산이 기타 계열사를 이끌며 사업 조율과 견제 기능을 수행할 것이란 분석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