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스템 붕괴 위기 진단…"北위협 등 고려한 거국중립내각 필요"
김수한 "이해관계 없이 거국체제로"·김원기 "여야 합의되면 중립내각"
임채정 "대통령 하야·탄핵은 나라 혼란"…국정안정 협조 주문
전문가들 "성역없는 수사로 진상규명, 조속한 인적쇄신 불가피"


'최순실 비선 실세' 파문으로 정국이 혼돈에 빠진 가운데 국가 원로와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수습할 해법으로 대폭적인 인적쇄신을 거친 '거국중립내각' 구성에 무게를 뒀다.

이번 사태를 정부 시스템의 붕괴이자 국가적 위기로 보고, 북한의 도발 위협이 상존하는 분단 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해 여야가 한동안 정쟁을 접고 국가 정상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여야 모두 정파적 이해만을 추구할 때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앞날을 봐야 한다는 조언인 셈이다.

우리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데다 세계금융을 좌우하는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과 함께 부동산시장 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이들이 야당과 연정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거국중립내각'의 필요성에 힘을 싣는 이유다.

또한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를 통해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명명백백한 진상규명을 하는 것이 모든 해법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2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거국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거국내각을 한다면 어떤 형태냐, 누가 구심점이냐의 문제가 있지만 국회를 중심으로 각 정당이 일시적 이해관계를 따질 게 아니라 냉철하게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인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에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머리를 맞대야 한다"면서 "합의만 된다면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상임고문인 임채정 전 국회의장도 "박근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권력을 내려놓고 국가의 형태만 갖추고 있되, 거국내각이나 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면서 "지금 다른 생각을 했다간 엄청난 비극으로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치평론가인 신율 명지대 교수는 "최순실 의혹에 대한 진실을 밝힌다고 해서 국민이 느끼는 절망감과 좌절감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박 대통령 스스로 '개헌 관리자'로서 역할을 수용하든, 여야가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하든 둘 중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현 사태를 수습할 방도는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원로들과 전문가들은 또 거국내각의 전제로 박근혜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들었다.

일단 국가 원수가 상징적 차원에서라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거국내각의 구성과 원활한 운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야당 출신 원로들까지도 야권이 탄핵이나 하야 요구 등을 한동안 자제하고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안정적으로 차기 정권에 이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 전체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북한의 위협을 당면한 상황에서 나라가 공중분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밝혔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나라를 이끌고 나갈 정당성을 잃었기 때문에 국민 정서는 박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 탄핵해야 한다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박 대통령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는 것을 직시하고 나라를 회생시키기 위해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이 납득할만한 고백을 하고, 적극적으로 반성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의 자기 변화와 국정 일신을 요구했다.

다만 현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최소한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과감한 인적 쇄신은 불가피한 절차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대통령의 곁에서 바른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최 씨의 국정농단을 방조한 청와대 수석들과 총리·장관들이 자리를 보전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국방, 외교 등 극소수의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참모진과 내각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거국내각 구성 등 장기적 해법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쏟아지는 의혹들에 대해 명백하게 진상을 규명해서 국민에게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거국내각 구성은 나중의 문제이고, 일단 박 대통령이 이번에 불거진 의혹을 자꾸 합리화하려는 대신 이를 모두 해소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면서 "최 씨의 귀국을 종용하고 검찰을 불러다 성역없이 수사하라고 본인 입으로 주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진휴 국민대 교수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결단 없이 성역없는 수사는 불가능하다"면서 "여권이 스스로 특검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내려놓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여야가 논쟁 중인 특검 추천권은 물론 대통령이 가진 임명권 또한 이양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류미나 박수윤 현혜란 기자 run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