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 심리 안정…이웃 알아보고 미소
김양희 도의장 위로 방문 "행정기관이 세심하게 보호해야"

"나 형이야. 형 알아보겠니?" "어. 형"
청주 오창의 한 축산농가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19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재회한 지적 장애인 고모(47)씨의 얼굴에는 요즈음 화색이 돌고 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상상도 못했던 꿈 같은 날들이다.

아직 오랜 강제노역에서 오는 정신적·육체적 충격은 남아 있는 듯하지만 자신의 집을 찾는 이웃들을 만나면서 옛 기억도 찾아가고 있다.

며칠 전까지 불리던 '만득이'라는 이름도 서서히 잊어가는 분위기다.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자식을 잃은 한을 안고 살아온 어머니도 고씨를 보는 것만으로 절로 웃음이 나온다.

고씨는 지난 16일 집에 찾아온 고향 형인 임병운 도의원을 보고 '형'이라고 불렀다.

임 의원은 "천안의 축사로 일하러 가기 전에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20여년 전에 본 내 얼굴을 기억하고 형이라고 불러 주더라"고 전했다.

고씨는 주변에 사는 이모나 이종사촌들이 집에 찾아오면 웃으며 즐거워한다고 임 의원은 전했다.

임 의원은 "고씨가 실종됐을 당시 마을에는 '누가 일 시키려고 데려간 것 같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아들을 얼마 찾지 못한 채 포기하는 고씨 어머니가 안타까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고된 외지 생활을 한 고씨를 마을 주민들은 따뜻하게 반기고 있다.

몸 보신 하라며 고깃국을 끓여 오는 인심이 줄을 잇는다.

초복인 지난 17일에는 이웃 주민이 삼계탕을 끓여와 고씨 가족을 먹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고씨의 손을 꼭 잡고 "다시는 그런 데 안 가도 되니 여기에서 편히 살어"라고 다독인다.

말뜻을 이해하는 듯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고씨의 입가슬그머니 미소가 번진다.

김양희 충북도의회 의장도 18일 오후 고씨의 집을 찾아 위로했다.

김 의장은 정신적 충격을 이겨내고 있는 고씨의 손을 두손으로 꼭 잡고 "엄마 만나서 좋죠"라고 말을 건넸다.

운동화를 신겨 준 뒤 끈을 묶어 주고 집을 나섰다.

그는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 여성 장애인이 많다"며 "의회가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집행부는 정책적으로 더 세심하게 돌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의 어머니와 누나도 지적 장애인이다.

밥은 짓지만 변변한 반찬을 만들지는 못한다.

고씨가 19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 한번 해 주지 못했다.

이웃 주민들이 주는 음식을 상에 올려놓는 정도다.

끼니 한끼 챙겨주지 못하는 마음이 아픈지 밥상머리에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미안함을 전한다.

주민들은 딱한 고씨 가정을 지역사회가 나서서 돌봐주기를 원한다.

한 이웃 주민은 "실종됐던 아들이 19년 만에 돌아왔는데도 맛있는 음식을 손수 해주지 못하는 어머니 심정은 오죽하겠느냐"며 "자선단체에서 기구에서 반찬 봉사를 해줬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이승민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