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마다 '초저가 PB상품' 하나만 진열…세계 유통업계 뒤흔드는 독일 슈퍼마켓 알디
독일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알디(Aldi)가 세계 소매유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영국 1위 대형 할인마트인 테스코는 올 2월 말 끝난 2014회계연도에서 세전 기준 63억8000만파운드(약 11조원)의 손실을 냈다. 1919년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이었다. 위기에 빠진 테스코는 매장 47곳을 폐쇄하고, 신규 매장 43곳 개설 계획을 포기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아야 했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1990년대 초반 영국에 진출한 알디에 꾸준히 고객을 빼앗긴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알디는 고품질의 상품을 초저가에 판매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테스코보다 약 20% 낮은 가격에 물건을 판다.

2000년대 초 진출한 호주에서도 알디는 약 1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며 호주 슈퍼마켓 시장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올워스와 웨스트파머스의 양강 구도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에선 ‘잠자는 거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도 점차 인지도를 높여가 어느 순간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알디는 현재 17개국에서 1만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초저가 고품질’ 전략

품목마다 '초저가 PB상품' 하나만 진열…세계 유통업계 뒤흔드는 독일 슈퍼마켓 알디
알디의 기원은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를과 테오 알브레히트 형제의 어머니가 독일 에센에 연 작은 식료품 가게가 시작이다. 1920년 태어난 카를과 1922년생인 테오는 어머니의 가게 일을 도우며 자랐다. 1946년 성인이 된 그들은 어머니의 가게를 물려받아 독일 전역으로 사업을 넓혀 나갔다. 알디라는 이름은 1960년 회사 이름을 바꾸면서 생겨났다. ‘알브레히트 형제의 디스카운트 스토어’란 뜻이다.

형과 아우는 1962년 회사를 쪼갰다. 형인 카를은 독일 남부에서 ‘알디 쥐트(Sud)’를, 동생인 테오는 독일 북부에서 ‘알디 노르트(Nord)’란 이름으로 회사를 경영했다. 해외 진출도 각각이다. 영국과 아일랜드, 호주 등 영어권에 진출해 있는 알디는 알디 쥐트다. 알디 노르트는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 진출해 있다. 미국엔 쥐트와 노르트가 모두 진출해 있다. 대신 알디 노르트는 미국에서 ‘트레이더스 조’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알디는 독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슈퍼마켓이다. 저가 상품을 내세운 탓에 처음엔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알디에서 쇼핑하는 소비자는 자신들이 이런 저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구매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해 알디에 와서 물건을 사면서도 다른 슈퍼마켓의 쇼핑백에 담아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1990년 통일 이후 독일 경제가 부진의 늪에 빠지자 사람들은 싼 물건을 찾아 알디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한번 써보니 제품 상태가 나쁘지 않았고, 독일 경제가 회복한 뒤에도 사람들은 계속 알디를 찾게 됐다.

판매 상품의 90% 이상이 PB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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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디의 핵심 가치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낮은 가격, 높은 품질, 고객 신뢰다. 세상의 모든 슈퍼마켓이 이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목표 달성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알디는 이를 자체 브랜드(PB) 상품과 PB상품에 대한 철저한 품질관리로 해결했다.

알디 매장에선 코카콜라나 펩시, 하이네켄, 하인즈케첩 같은 브랜드 상품을 찾아볼 수 없다. 판매 상품의 90~95%가 PB 제품이다. 공급가를 일방적으로 정하는 대형 브랜드가 아닌 중소형 업체와 손을 잡고 제품을 만들다보니 최소 15%에서 최대 30% 싼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품목마다 '초저가 PB상품' 하나만 진열…세계 유통업계 뒤흔드는 독일 슈퍼마켓 알디
일반적으로 PB제품은 값은 싸도 질은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다. 이런 소비자의 염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알디는 100% 환불제도를 도입했다. 제품을 구입한 고객이 아주 조그만 부분이라도 만족해하지 않으면 알디는 흔쾌히 전액을 환불해준다. 언제든지 돈을 돌려줄테니 일단 써보라는 뜻이다.

동시에 알디는 PB상품 제조업체에 대한 엄격한 품질관리를 한다. 의심이 드는 제품이 있으면 불시에 공급처를 방문해 경위 조사에 들어간다. 개선의 기미가 없으면 거래처를 바꾼다. 자신들의 사업이 고객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의 질에 대한 자신감을 갖자 정부의 품질 평가에도 적극적으로 응해 자사의 PB제품이 유명 브랜드 제품과 비교해도 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을 알렸다. 독일 정부는 매달 제품 평가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여기서 알디의 PB제품은 글로벌 브랜드인 P&G나 유니레버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 사람들 사이에선 “알디 산다”라는 말도 생겨났다. 알디에서 쇼핑한다는 뜻으로, 그만큼 알디 PB제품에 대한 소비자 충성심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품목당 한 브랜드만 진열

값을 낮추기 위한 알디의 또 다른 방법은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이다. 알디 매장의 상품 진열대엔 품목마다 한 가지 브랜드밖에 놓여 있지 않다. 대개 자사 PB제품 한 가지만 가져다 놓는다. 고객의 선택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으면, 가격을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고객은 결국 알디로 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취급 품목 수는 1000~1600개가량이다. 대형마트의 취급 품목 수가 3만~10만여개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거의 동네마트 수준이다. 평균 매장 크기도 약간 큰 동네마트 수준인 1000㎡ 정도다. 제품은 박스째 쌓아놓는다. 한국의 대형 마트처럼 진열대마다 안내 직원을 배치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인건비와 매장 유지비가 적게 든다.

이런 전략은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빛을 발했다. 상대적으로 견조한 경제 회복을 보인 영국과 미국에서도 실질 임금은 정체되거나 감소했다. 체면보다 절약이 더욱 중요해졌다. 전통적으로 세인즈베리, 웨이트로즈 등에서 장을 봤던 영국 중산층도 알디로 발걸음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최근 한 시장조사기관 보고서에서는 독일계 슈퍼마켓인 알디와 리들의 고객 3명 중 1명이 중산층 또는 상위 중산층이란 결과가 나왔다.

짐 프레보 페리셔블펀딧 애널리스트는 “알디는 문화적 티핑포인트(갑자기 상황이 변하는 순간)를 지나고 있다”며 “처음에는 알디에서 쇼핑하는 것을 비웃던 사람들도 이제 알디를 즐겨 찾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