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 명 사망 대형참사에 "사우디 정부 탓" 비난 이어져
올해 취임한 살만 왕권 '휘청'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연이어 발생한 대형 참사로 안 그래도 내우외환이 겹친 '중동의 맹주' 사우디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강한 사우디'를 천명하며 올해 1월 취임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의 리더십도 연이은 악재 속에 위기를 맞고 있다고 24일(현지시간) AFP통신과 미국 일간 LA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최소 719명이 숨지고 863명이 다친 이날 성지순례(하지) 압사 참사는 대형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던 성지순례 사고 중에서도 25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사고다.

사고가 발생하자 이웃 이슬람 국가들은 사우디 당국의 잘못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사우디 당국의 실수와 부적절한 대응이 재앙을 낳았다"며 "사우디아라비아가 반드시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로,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와는 오랜 숙적인 이란은 이번 참사로 자국민 41명이 숨지고, 6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사고 이후 18명의 자국민이 실종됐다고 밝힌 터키도 "중대한 운영상의 문제"라며 사우디 당국의 운영 미숙을 꼬집었다.

불과 13일 전에 발생한 메카 크레인 붕괴 참사도 사우디의 무분별한 난개발로 인한 인재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처럼 '피할 수 있었던' 두 번의 참사는 이슬람 종주국으로, 해마다 수백만 명의 전세계 이슬람 순례객이 몰리는 성지순례를 주관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왔던 사우디에는 크나는 타격이다.

특히 2006년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성지순례 참사가 올해 들어 연이어 터지면서, 공식명칭이 '두 성지(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인 사우디 국왕은 성지 수호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셈이 됐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세를 과시하려고 성지를 무리하게 넓히려고만 했을 뿐 성지나 성지순례 관리에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르판 알알라위 이슬람유산연구재단 공동 설립자는 "군중을 통제하지 못한 데다 정부의 전략도 부재했다"며 "사우디는 시설 개선을 위해서는 애써왔지만 우선순위인 안전과 건강 문제에서는 늘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와 살만 왕권은 이번 참사 이전에도 최근 잇단 악재로 중동의 맹주 자리를 위협받아 왔다.

그중에서도 좀처럼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유가는 사우디의 앞날에 가장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는 악재다.

지난해 여름부터 급락한 유가가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석유산업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사우디는 재정 부담으로 8년 만에 국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석유산업을 통해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사우디 왕실이 민심을 다스리고, 또 사우디가 중동 패권국가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저유가 고착화는 사우디에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살만 국왕이 즉위 2개월 만에 국내 반발을 무릅쓰고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며 예멘 내전에 개입한 것도 국왕의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리는 부분이다.

이후 6개월간 예멘 내전이 진전을 보이지 않고 민간인 사망자까지 늘어나면서 인권단체의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2년째 사우디를 괴롭히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세력의 테러 위협도 살만 왕권을 휘청이게 하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mih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