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선거 사찰 없었다…대북 자료는 삭제"
국가정보원 직원이 최근 민간인 사찰 등 국정원 해킹 논란과 관련해 결백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이 직원이 자살하기 전 삭제한 해킹 관련 자료에 대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한 가운데 국정원은 직원 일동 명의로 보도자료를 내고 “국가안보의 가치를 더 이상 욕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인 임모씨(45)는 지난 18일 자신의 마티즈 승용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질식사했다. 조수석에서 A4 용지 크기의 노트에 자필로 쓴 유서(사진) 세 장이 발견됐다. 19일 공개된 유서에서 임씨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관련해 “내국인과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며 “내 행동과 관련해 (외부에서) 우려할 부분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고 적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임씨는 전북 모 대학 전산과를 졸업한 뒤 20년간 국정원에서 사이버 안보 업무를 담당했다. 다른 부서에서 북한이나 테러와 관련된 인물에 대한 해킹 요청이 들어오면 이를 수행하는 기술자였다. 스마트폰 해킹 기능으로 논란이 된 해당 프로그램도 임씨가 직접 이탈리아 업체와 접촉해 구입했다. 이 의원은 “해당 프로그램이 정치 이슈화되고 구입 경위에 대해 국정원 내부에서 감찰이 들어오면서 압박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유서에 “대테러, 대북 공작 활동과 관련해 오해를 일으킬 만한 자료는 삭제했다”고 적었다. 그는 자살 전날까지 휴일에도 출근해 관련 업무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새정치연합은 추가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 사찰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관련 직원의 돌연한 죽음은 또 다른 의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의혹이 제기된 이후 국정원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국정원 직원들은 성명에서 “임씨의 죽음을 정치적 공세의 소재로 삼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며 “국정원이 약화돼도 상관없다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해당 해킹 프로그램은 35개국 97개 기관이 구입했지만 근거 없는 의혹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임씨가 삭제한 파일을 복원해 곧 모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도 “정치권은 국정원 관련 이슈만 불거지면 무조건 의혹부터 제기하는데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순서”라고 논평했다.

윤희은/유승호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