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카이퍼 벨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에서 왔다. 소설 속 B612는 1909년 발견돼 1920년 공인된 걸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 소행성 ‘612 베로니카’는 1906년 발견됐다. 소설처럼 1909년에 발견된 소행성은 676~695번뿐이다. 어린 왕자의 별은 상상 속 별이다.

소행성은 태양계 형성 때 미처 행성이 되지 못한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미(微)행성 또는 충돌 파편을 가리킨다. 띠를 이뤄 태양을 공전하며 주로 화성과 목성 사이에 포진해 있다. 1801년 1번 소행성 세레스가 발견된 이래 2010년까지 23만여개가 등재됐다. 한국 이름의 소행성도 11개 있다. 세종(7365번), 최무선(63145번), 허준(72059번), 홍대용(94400번) 등이다. 매년 수천개씩 발견되니 전체가 몇 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태양계 소행성은 여러 곳에 분포한다.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帶) ‘아스테로이드 벨트(Asteroid belt)’엔 지름 1㎞ 이상만도 약 100만개로 추정된다. 가끔 궤도를 이탈한 소행성이 별똥별이 된다. 목성 바깥의 트로이 소행성대, 토성과 천왕성 사이를 도는 키론도 있다.

더 먼 해왕성 바깥에 소행성대 ‘카이퍼(Kuiper) 벨트’가 있다. 1951년 해왕성 너머에 원반 모양으로 수많은 소행성이 있다는 가설을 세운 제러드 카이퍼의 이름을 땄다. 그의 가설은 1992년 지름 320㎞짜리 천체 ‘1992 QB1’이 발견돼 입증됐다.

카이퍼 벨트에선 약 670개의 천체가 발견됐다. 공전주기 200년 미만인 단주기 혜성의 고향이며 명왕성도 그 언저리에 있다. 명왕성이 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격하된 것은 카이퍼 벨트의 천체들을 끌어들일 만한 중력을 갖지 못한 탓이다. 명왕성보다 크고 위성도 있는 왜소행성 에리스, 1호 소행성 세레스도 행성 지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카이퍼 벨트가 태양계 끝이 아니다. 그 너머에 에리스가 속한 산란 원반(Scattered Disk), 더 바깥에는 수조(兆)개 핵으로 이뤄진 거대한 오르트 구름(Oort Cloud)이 태양계를 감싸고 있다. 오르트 구름은 태양계 생성 때의 잔재여서 태양계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지 모른다.

거의 10년을 날아 명왕성의 신비를 전해준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이제 카이퍼 벨트로 향한다고 한다. 어디까지 갈지, 태양계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인간이 겨우 알아낸 명왕성까지 거리가 48억㎞다. 태양계 밖 가장 가까운 별은 빛의 속도로 4.3년을 가야 한다. 얼마나 미미한 인간인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