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두 개의 꿈으로 갈라지는 중국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닮은 점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고, 시 주석의 부친은 덩샤오핑과 함께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시중쉰 전 부총리다. 시련을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담금질해왔다는 평도 함께 듣는다.

두 지도자가 취임 전후 내건 슬로건도 비슷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내세웠고, 시 주석은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1인자인 총서기 취임 자리에서 ‘중국의 꿈’을 역설했다.

자살이 꿈이었다는 소년

두 지도자는 그러나 꿈을 선전하는 대목에선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어록에서 꿈은 어린이날 정도에나 볼 수 있는, 빈도가 낮은 단어가 됐다. 반면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전임 지도자들의 단골 레퍼토리에 꿈을 붙여 수시로 중국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일당 지배체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중국의 꿈’은 매년 3월 발표하는 정부 업무보고는 물론 주요 정책발표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유행어가 됐다. 지난 5월초 국무원(중앙정부)이 중국을 제조강국으로 키우겠다며 발표한 ‘중국제조 2025’ 문건에서도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것”이라는 배경 설명이 들어갔다.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는 위대한 중국 꿈의 연장선”(인민일보)이라는 평가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9일 구이저우성 비제시에서 5세, 7세, 9세에 불과한 세 명의 여동생과 함께 농약을 먹고 자살한 14세 장샤오강 군의 유서는 ‘중국의 꿈’ 앞에 탄탄대로만 놓인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나는 15세를 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죽는 건 내 오랜 세월의 꿈이었다.” 중국 언론들이 전한 유서의 내용이다. 리커창 총리는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나태한 관료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고, 두 명의 지방 관료가 보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관료들을 다그친다고 될 일만도 아니다.

소외받는 농민공 자녀

네 남매의 어머니는 지난해 3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광둥성으로 일하러 떠났고, 지난 3월엔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 네 남매끼리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네 남매의 동반자살은 다른 농민공 자녀들도 장군과 같은 ‘나쁜 꿈’을 꿀 것이라는 우려를 부각시켰다. 중국의 농민공은 2억7000만여명으로 대다수는 도시로 호구(호적)를 옮길 수 없어 자녀를 고향에 남겨 두는데 중국여성연합 조사에 따르면 농민공 자녀 중 6100만여명이 3개월에 한 번도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장군을 극단의 선택으로 몬 건 가난만이 아니었다.네 남매의 통장엔 정부 보조금 3568위안(약 64만원)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같은 마을 주민들은 중국 언론에 “네 남매가 고립된 섬에 산 것처럼 생활했다”고 전했다. 무관심이 만든 외로움이 사회에 대한, 미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무엇이 이 소년의 어른들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을까”란 중국 네티즌의 한탄이 이와 다르지 않다.

극단적인 불신에 빠진 아이들이 절망을 꿈에 담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중국의 꿈’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청소년 자살률 1위 국가란 통계가 오버랩된다. 중국 네 남매의 죽음이 남의 나라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오광진 중국전문기자·경제학박사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