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부가 산업 '선단형 R&D' 필요하다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의 필요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제기되고 있다. 최근 고착화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를 극복하고 선진화된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부가 산업 육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부가’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의 고부가 산업은 부가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성장세도 둔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고부가 산업을 통신기기·항공우주·제약 등 첨단기술제조업과 금융·통신·사업서비스 등 지식집약 서비스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둘을 합한 한국 고부가 산업의 부가가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시적으로 급증했지만 2011년부터 급락세로 돌아섰고, 특히 첨단기술제조업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주저앉았다. 이에 따라 고부가 산업의 부가가치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으나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성장성을 살펴보는 매출액 증가율도 마찬가지다. 2009~2013년 고부가 산업의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전산업(8.1%)과 동일한 수준을 보여, 고부가 산업의 특징인 고성장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첨단기술제조업은 제조업 평균보다 높은 반면, 지식집약서비스업은 서비스업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수출경쟁력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첨단기술제조업은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이 장기간 약 6%에 머물러 있다. 대다수 첨단기술제조업종의 수출시장 점유율이 정체 또는 감소했으며, 특히 컴퓨터·사무용기기는 세계 시장규모가 커졌는데도 한국 제품 수출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뒷걸음질했다. 제조업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첨단기술제조업 비중도 2003년 35.5%에서 2012년에는 21.7%로 위축됐으며, 미미하나마 커졌던 무역수지율 역시 2011년부터 하락세로 바뀌었다.

그동안 자금, 인력 등 대규모 연구개발 자원을 투입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고부가 산업은 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중국의 무서운 성장세를 꼽을 수 있다. 1999년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중국 첨단기술제조업의 수출 시장 점유율은 2012년에 27.7%까지 급증했다. 중국이 글로벌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첨단기술산업의 고도화가 빠르게 진행됐고 한국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또 한국의 경우 경쟁력 있는 고부가 산업으로 다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통신기기 업종이 첨단기술제조업 부가가치의 70%를 차지한다. 지식집약서비스업에서도 사업서비스는 미국, 독일, 일본보다 GDP 비중이 크게 낮다. 부족한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핵심기술의 해외 의존도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기술 수급의 불일치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개발 기술의 활용도 또한 미흡한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미래 먹거리를 일구지 못한 채 미국, 일본, 독일은 물론 중국 상품에 끌려다니며 산업 자체가 와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에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고부가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총괄하는 맞춤형 정책이 요청된다. 첨단기술제조업 측면에서는 경쟁력을 다시 강화할 수 있도록 국가 주도의 기초기술과 사업화를 촉진하는 ‘선단형 연구개발(R&D)’ 체제를 갖춰야 한다. 경쟁력 있는 고부가 제조업종으로 다변화하고, 정보통신기술을 여타 업종에 활용하는 융합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또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높고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지식기술서비스를 육성하는 대책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다른 산업의 성장도 견인하는, 파급력이 큰 산업의 경쟁력 강화 여부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장균 <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johnlee@hr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