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수 세리머니 > 브리타니 린시컴(가운데)이 6일 미국 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뒤 자신의 캐디 미시 페더슨(왼쪽), 아버지 톰 린시컴과 함께 18번홀 옆의 포피 호수에 뛰어들어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호수 세리머니 > 브리타니 린시컴(가운데)이 6일 미국 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뒤 자신의 캐디 미시 페더슨(왼쪽), 아버지 톰 린시컴과 함께 18번홀 옆의 포피 호수에 뛰어들어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친구야 미안, 그리고 고마워.’

'역전의 여왕' 김세영, 역전에 울다
2009년 우승 데자뷔를 완성한 브리타니 린시컴(30·미국)은 챔피언 퍼팅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지 않았다. 동갑내기 친구 스테이시 루이스(30·미국)의 불운이 곧 자신의 우승으로 연결됐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퍼팅 어드레스를 길게 끌지 않은 것도 친구를 위한 예우였다. “우승이라니, 너무도 격한 감정이 몰려온다”며 린시컴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루이스는 말없이 라커룸으로 들어가 머리를 감싸안았다. ‘모든 게 다 디벗(스윙으로 잔디가 움푹 팬 자국) 때문이야.’

○루이스, 이번엔 디벗 트라우마가

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에서 열린 미국 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 최종라운드. 연장 세 번째 홀에서 세 번째 샷을 날리기 위해 어드레스를 하려던 루이스는 불길한 예감에 멈칫했다. 지난달 JTBC파운더스컵 때의 악몽이 떠올라서다. 당시 마지막홀 세컨드 샷을 남겨둔 그는 깊게 파인 디벗(스윙으로 잔디가 움푹 팬 자국)에서 친 샷이 감기는 바람에 다 잡다시피했던 우승컵을 김효주(20·롯데)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번에도 두 번째 샷이 디벗에 빠지며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 께름칙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날린 세 번째 샷은 홀컵에서 25m가량 못 미치는 프린지에 풀썩 떨어지고 말았다. 분을 삭여가며 친 네 번째 칩샷 어프로치는 그린 중간에 멈춰섰다. 퍼팅마저 홀컵 오른쪽으로 흘렀다. 통한의 보기. 37만5000달러의 우승상금이 걸린 연장전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연습라운드를 오랫동안 같이했던 린시컴은 그에게 아이언샷과 퍼팅을 가르쳐달라던 친구이자 라이벌. 린시컴은 침착하게 두 번의 퍼팅으로 볼을 컵에 집어넣었다. 지독한 ‘태극마크’ 트라우마가 ‘디벗’ 트라우마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연장 징크스 털어낸 린시컴

루이스는 새로운 징크스에 울었지만, 린시컴은 지긋지긋한 징크스를 털어냈다. 린시컴은 연장 4전 전패라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2010년 벨마이크로클래식에서 박세리(38·하나금융그룹)에게 패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호주여자오픈(제시카 코르다 우승), 2014년 LPGA챔피언십(박인비 우승), 하나·외환챔피언십(백규정 우승)에서 모두 눈물을 삼켰다.

린시컴의 이날 우승은 행운의 이글에서 시작됐다. 김세영(22·미래에셋)과 루이스의 앞조에서 경기하던 그가 18번홀(파5홀) 하이브리드로 친 두 번째 샷이 왼쪽 그린을 타고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홀컵 우측 3m 근처에 붙었다. 2009년 그가 18번홀에서 이글을 잡고 같은 대회에서 우승한 것과 거의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 2009년의 데자뷔다.

린시컴은 2009년 이 대회의 전신인 크래프트 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 첫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도 18번홀에서 역전에 성공했다. 당시 최종라운드 17번홀까지 크리스티 맥퍼슨(미국)에게 1타 뒤져 있던 그는 18번홀 이글로 승부를 뒤집었다.

○김세영, 통한의 더블 보기 두 번

김세영이 6일 ANA인스퍼레이션 마지막 라운드 2번홀에서 벙커샷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세영이 6일 ANA인스퍼레이션 마지막 라운드 2번홀에서 벙커샷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3타 차 리드로 경기를 시작한 ‘역전의 여왕’ 김세영은 7언더파로 카를로타 시간다(25·스페인), 안나 노르드크비스트(28·스웨덴)와 함께 공동 4위로 경기를 마쳤다. 전·후반 한 개씩 적어낸 더블 보기 2개가 아쉬웠다. 전반을 끝낼 때까지 2타 차 선두를 유지했으나 후반 들어 티샷이 자꾸만 왼쪽으로 말렸다. 우승에 대한 압박이 심했다. 마지막 라운드를 선두로 나서다 우승한 적이 없는 김세영이 첫번째 ‘수비 골프’에서 쓰라린 아픔을 맛본 것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