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동력 떨어져 또 무산…"경영권 프리미엄 포기해야" 지적

우리은행 매각이 이번에도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 때 우리금융지주 매각이 3차례 실패한 것까지 포함하면 4번째 고배다.

이번 매각도 지난 3차례 시도와 마찬가지로 흥행 실패가 예고된 측면이 적지 않다.

매각을 진두지휘한 금융위원회의 책임론이 급부상할 전망이다.

매각 원칙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게 됐다.

민영화의 최우선 가치로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대신 '빠른 민영화'를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공식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특정 대주주에게 넘어가지 않고 대다수 임직원의 바람대로 지분 분할 매각의 기회를 노릴 수 있어 반기는 분위기다.

◇'먹기좋게' 잘라놨지만 손님은 1명뿐
금융위는 이번 우리은행 경영권 매각에 나름대로 공을 들였다.

우여곡절 끝에 3차례나 좌절된 것을 감안, 현실적으로 매각 가능성이 가장 큰 시나리오를 짰다는 설명이다.

우리은행 덩치가 11조원에 달해 한꺼번에 정부 지분을 매각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지분의 30%를 경영권 입찰로, 26.97%를 소수지분 입찰로 나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6월 "반드시 민영화에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지난 1년간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민영화를 추진해 왔다"며 매각에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애초 시장에서는 매각 성사 가능성이 작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생명보험 업계 3위 교보생명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중국의 안방보험 등 해외 금융사 일부가 실무검토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대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신창재 회장의 교보생명으로 우리은행이 넘어가는 것에 대해 정부가 부정적인 입장이고, 실제로 그런 의사를 전달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정부는 부인했지만, 시중은행이 개인 대주주의 지배 아래 들어갈 경우 기업금융 비중이 큰 우리은행의 '공공적 역할'이 위축될 뿐 아니라 특혜시비마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인정했다.

보험업법상 교보생명이 우리은행 인수를 위해 직접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자산의 3%(약 1조3천억원) 뿐이어서 3조원대로 추정되는 인수자금 조달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도 나왔다.

결국 예비입찰에는 중국 안방보험만 참여, 본입찰에 가 보지도 못하고 '유효경쟁 불성립'으로 매각 작업은 좌초했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는 "애초 살 사람도 없고 매력이 없는 상품이었다"며 "은행이 매력적인 사업 분야가 아닌데 정부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팔려고 하니 누가 나서겠나"라고 지적했다.

◇매각 4번째 좌절…"민영화 원칙 바꿔야"
정부의 우리은행 민영화는 이번에도 실패했다.

우리금융지주를 해체하고 지방은행 계열과 증권 계열까지 파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영화의 핵심인 은행 매각이 무산됐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 때의 지주사 매각 실패까지 포함하면 4번째 좌절이다.

우리금융은 1990년대 은행권을 주름잡던 5대 시중은행 중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쳐 만들어진 곳이다.

나중에 평화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도 편입됐다.

정부는 이들 부실 금융회사를 모아 정상화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 채권을 발행, 우리금융에 공적자금 12조8천억원을 투입하고 우리금융 지분 100%를 갖게 됐다.

지금까지 회수된 공적자금은 5조8천억원(회수율 45.1%)이다.

공모 및 4차례의 블록세일(지분 대량 분산매각) 등을 통해 지분을 꾸준히 줄여온 결과다.

그러나 2010년부터 3년 연속 시도된 '화룡점정' 격의 민영화는 번번이 실패했다.

2010년 독자 민영화를 위해 꾸려진 '우리금융 컨소시엄'이 불참해 민영화 작업이 중단된 데 이어 2011년에 산은금융지주가, 2012년에 KB금융지주가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관치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매번 중단됐다.

정부는 이번 유찰에도 우리은행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에 매각이 성사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시장 설득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효과적인 매각 방안을 다시 고민해 보겠다"며 "재입찰을 할지, 입찰 계획을 수정할지 정해진 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금융권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아야 한다는 정부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당분간 우리은행 매각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지분 30%를 한꺼번에 넘기겠다는 계획을 버리고 지분을 쪼개 과점주주 형태로 가는 게 맞다"며 "이와 함께 우리은행의 지배구조를 제대로 갖춰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 몸값을 올리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은행 매각, 과점주주 체제로 선회하나
우리은행은 공식적으로 정부의 민영화 추진에 최대한 힘을 보탠다는 게 공식적인 방침인 만큼 이번 매각 실패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부적으론 이미 이번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했던 상황에서 임직원들이 바라는 과점주주 체제로 민영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은 은근히 퍼졌다.

우리은행은 국민·신한·하나은행과 함께 '4대 시중은행'으로 꼽히지만, 공적자금 투입 은행이라는 '굴레' 탓에 정부와 예보의 통제를 받는다.

임직원 급여 인상이나 마케팅 비용 집행 등이 제한돼 불만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예보의 지분을 모두 팔아 경영권이 민간으로 넘어가는 게 가장 큰 과제이지만, 민영화의 방법에선 금융회사나 외국계 자본의 인수보다는 다른 시중은행처럼 과점주주 체제를 가장 선호한다.

한 마디로 '주인 없는 회사'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외환은행을 팔고 떠난 론스타처럼 외국계 자본에 넘어가면 우리은행의 경쟁력이나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보다는 자산 매각 등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며 "개인 대주주에 넘어가면 국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다른 금융회사에 넘어가면 구조조정의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가 4차례나 실패를 거듭한 만큼 경영권을 통째로 넘겨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는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보다 어떻게든 정부 지분을 빨리 처분하는 '조속한 민영화'가 우리은행 매각의 최우선 원칙으로 대두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다만, 이렇게 되려면 예보 다음으로 지분을 많이 보유한 국민연금(지분율 8.21%) 수준까지 예보 지분율을 줄여야 하고, 이 과정에서 주가 하락으로 공적자금 회수율이 낮아질 경우 정부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게 난제로 꼽힌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 홍정규 기자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