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서 오류 판결은 처음…구제소송 실효 작아 평가원 상대 손배 가능성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진 지 1년 가까이 지나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출제오류가 판명되면서 당시 불이익을 당한 수험생이 구제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65만명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고시인 수능에서 출제오류가 인정된 것도 이번이 벌써 4번째여서 수능 출제와 채점을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과 교육부는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 출제오류 인정된 세계지리 8번 문항은 =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16일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에 출제 오류가 있다며 수험생이 평가원을 대상으로 낸 소송 2심에서 사실상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논란이 된 세계지리 8번 문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옳은 설명만을 '보기'에서 고르는 문제로, 평가원은 'A(유럽연합)는 B(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인 'ㄷ'항을 맞는 설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EU의 총생산액이 16조5천700억 달러, NAFTA는 18조6천800억 달러여서 이 보기가 틀렸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는 세계은행과 유엔의 지난해 통계로, 당시 문제에서 보기와 함께 제시된 세계지도의 오른쪽 하단에는 '2012'라고 적혀 있다.

이와 관련, 평가원은 "세계지리 교과서와 EBS 교재에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일반적 내용이 있고 2007∼2011년 통계도 마찬가지"라며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세계지리를 응시한 수험생은 3만7천684명이며 정답률은 49.89%였다.

평가원의 해명에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수험생 38명은 지난해 11월 29일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정답을 2번으로 결정하고 이를 토대로 수능 등급을 결정한 것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다음 달 5일에는 수험생 20여명이 행정소송에 합류했다.

상당수 일선 교사들도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학생들의 편에 섰다.

성남고 윤신원 지리교사는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이틀간 현직 지리교사 143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83.2%가 세계지리 8번 문항은 '출제오류'라고 답했다.

해당 문항이 '출제오류가 아니다'라는 응답은 9.8%, '잘 모르겠다'는 5.6%였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같은 해 12월 16일 해당 문항을 출제 오류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2014학년도 대학입시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되게 됐다.

논란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서울고법이 1심과 다른 결정을 내리면서 세계지리 8번 문항은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 고질적인 출제오류…피해는 수험생 몫 = 1994년 수능이 도입된 이후 출제 오류가 법원에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평가원이 스스로 출제오류를 인정한 것을 포함하면 수능 오류는 2004학년도, 2008학년도, 2010학년도에 이어 이번이 4번째다.

2004학년도 수능에서는 언어영역 17번 문제에서 복수정답 논란이 일었다.

당시 언어영역 17번 문항은 백석 시인의 시 '고향'과 그리스신화 '미노토르의 미궁'을 제시한 뒤 '고향'에 등장하는 '의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서 찾는 문제로, 평가원은 ③'미궁의 문'을 정답으로 제시했지만 ⑤'실'이 답이라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됐다.

평가원은 시험이 치러진 지 19일 만에 복수정답을 인정키로 했다.

원래 정답을 맞혔던 수험생 460명은 평가원장을 상대로 복수정답인정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2008학년도에는 물리Ⅱ에서 복수정답이 인정돼 정강정 당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수능 출제 오류의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

2010학년도는 지구과학Ⅰ에서 복수정답이 인정됐다.

다만 시험 성적을 채점하기 전인 이의신청 기간에 출제오류가 인정돼 파장은 비교적 작았다.

2000년대 들어 2∼4년꼴로 출제오류가 인정된 셈이다.

여기에 정답 시비가 붙는 문제까지 따지면 거의 수능이 치러질 때마다 문항과 정답의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2011학년도에는 언어영역 46번 문항의 정답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결국 정답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고, 같은 해 외국어영역은 사설 학원의 모의고사와 거의 똑같은 문항이 출제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 이미 끝난 입시 뒤집을 수 있나 = 이번 출제오류 인정은 과거의 경우보다 파장이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수능이 끝난 후 한두 달 안에 오류 여부가 판단된 예년과 달리 입시가 모두 마무리된 지 10개월가량이 지나서야 출제오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우선 소송에 참여한 수험생 이외에 8번 문항을 틀렸던 다른 학생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3점짜리인 8번 문항을 틀리는 바람에 등급이 떨어져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채우지 못하고 수시에 불합격한 학생이 입시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존 수능의 경우 만점자가 많은 과목에서 한 문제를 틀리면 1등급에서 바로 3등급으로 떨어진 수험생도 있었던 만큼 이런 경우라면 3점짜리 문제를 틀리면 최대 2등급까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세계지리 과목의 경우 8번 문항이 최종적으로 모두 정답처리되더라도 2등급까지 손해본 수험생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게 입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투스청솔 오종운 평가이사는 "지난해 세계지리 과목의 등급간 점수차를 분석해보면 3점차로 2등급이 내려갈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승소가 확정되면 수험생은 대학을 상대로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낼 수 있다.

이때 순수하게 세계지리 출제오류로 인한 등급 하락으로 수능 최저학력기준에 미달해 탈락한 것을 명백하게 입증한다면 사립대의 경우 민사소송을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수시에는 수능 최저학력기준 이외에도 논술, 면접 등 합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불합격 사유를 입증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공립대는 불합격 처분이 행정처분에 해당하고 행정처분은 처분일로부터 90일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어 소송을 내더라도 각하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세계지리 한 문제 때문에 불합격했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개인의 권리구제로 연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려면 앞으로 수개월 이상이 걸리는 만큼 소송을 제기해서 얻을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최종 판결이 나왔을 땐 당시 수험생들은 대부분 대학에 다니고 있을 것인데다가 대학도 2년 전 입시 결과를 뒤집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수험생들이 불합격을 뒤집기보다는 평가원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2심 판결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학이 이런 학생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단 판결문을 받아봐야 한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보고 3심까지 갈지를 판단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평가원 측은 "우리가 주장한 부분이 사법부의 판단에서 미진한 게 있다면 상고를 통해서 사법 판단을 다시 받아보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다"며 "평가원 입장은 (문제에 이상이 없다는) 주장을 계속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고은지 이신영 기자 mong0716@yna.co.kreun@yna.co.kreshin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