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上告법원 설치의 선결과제들
대법관은 6년의 임기 중 임명받은 날 하루만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상고사건 접수 건수는 2002년 1만8600여건에서 2013년 3만6100여건으로 10여년 사이 2배가량으로 늘었다. 항소사건 역시 크게 늘고 있는 추세이며, 2004년 이후 지방·고등법원의 판사 수도 1.5배 정도 늘었다.

그럼 판사 수를 늘리듯이 대법관을 증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일까. 그 전에 과연 대법원의 존재가치가 ‘최종심으로서의 사건처리’에 우선적으로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헌법은 제101조에서 대법원을 ‘최고법원(最高法院)’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법률적인 관점에서 제시하고, 법령의 최종적통일적 해석을 통해 통일된 법적 가치와 기준을 제시하며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대법원의 최고법원성(性)이 있다. 대법원은 2005년 여성에게 종중원의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그동안 소외됐던 여성의 권리구제가 이뤄졌고, 이는 여성의 지위향상으로 이어졌다. 또 통상임금에 관한 2013년 판결에서는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해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개별사건의 판단기준으로 삼게 했다. 2006년에는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몇 년 동안 새만금사업을 둘러싸고 빚어진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판결들은 모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으로도 국민의 인권이나 사회적으로 많은 의견대립이 있는 사건에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일된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고 사회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대법관 수가 현재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에서 더 늘어나면 전원합의체 판결이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다수 의견이다. 미국의 연방법원 대법관이 9명, 영국은 12명이란 점에서도 이는 일리가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2013년 대법원에서 처리한 3만5000여건 중 전원합의체 판결은 22건으로 0.06%에 불과하다. 작년 대법관 1명당 사건처리 건수는 2700여건으로, 이런 사건의 홍수 속에서 대법원이 최고법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1990년 폐지된 ‘상고허가제’를 다시 도입하는 것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상고법원안’을 건의했다. 대법원은 법령 해석의 통일을 위해 필요하거나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상고사건을 담당하고, 상고법원은 개별사건의 권리구제 기능을 담당하자는 것이다. 국민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면서 대법원의 최고법원성을 실현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상고법원안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고법원을 추진하기 전에 선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첫째 하급심 강화다. 사건당사자들이 왜 1, 2심 재판에 불복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 법관 스스로 공정하고도 신뢰받는 재판을 했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둘째 대법원과 상고법원의 사건 분류에 대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투명하고도 공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분류기준에 대해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상고법원안은 법원의 기득권 지키기로 비쳐져 오히려 사법부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다. 대법원이 법령 해석을 통일하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에서 보편·타당한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이는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을 가진 인적 다양성을 통해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전주혜 < 변호사·前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