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서 항의하지 않았어도 성희롱에 해당

동료 여직원에게 음란 동영상을 보여줬다면 상대방이 곧바로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성희롱에 해당해 징계 사유가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10부(김명수 부장판사)는 군무원 A(53)씨가 견책 처분을 취소하라며 공군 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2012년 11월 근무시간 중 함께 일하는 동료 여직원 B씨(53)에게 여성이 알몸으로 등장하는 음란 동영상을 보여줬다.

B씨는 그 자리에서 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가 3개월이 지난 뒤 A씨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B씨는 A씨가 사과하지 않자 부대 측에 진정을 냈고, 징계위원회에 넘겨진 A씨는 견책 처분을 받았다.

A씨는 "B씨가 먼저 음란 동영상을 보여줘 자신도 답례로 다른 영상을 보여줬을 뿐이고, 보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며 징계를 취소하라고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이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심은 "두 사람이 나이도 같고 부대 내에서 지위도 대등한 상황이어서 불쾌감이 들었다면 곧바로 이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남성 중심적 가치관과 질서가 지배하는 군부대 내에서 발생한 일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판단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군부대 내에서 여성이 성적 언동을 한 남성을 상대로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보인다"며 "B씨가 설령 즉각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고 해도 성희롱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가 먼저 음란 동영상을 보여줬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B씨는 다른 남성동료가 음란 동영상을 보내 기분이 나쁘다고 하소연하며 이를 A씨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당 부대에 근무하는 군인과 군무원 중 여성의 비율은 2012년 11월 사건 발생 당시를 기준으로 11.2%에 불과했던 점을 지적하며 "성희롱에 노출됐더라도 집단 내에서 문제를 제기해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성희롱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eshin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