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요?”

지난 9일 삼성 사장단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한 최고경영자(CEO)는 ‘휴가 일정을 잡았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부터 쳤다. 그룹 전반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고려할 때 너무 한가한 얘기 아니냐는 의미로 보였다. 맏형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이 7조원대 초반으로 급락하며 ‘어닝 쇼크’를 기록한 데다 이건희 회장의 입원이 두 달째로 접어드는 등 삼성 전체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사장단회의에서 “사장들부터 휴가를 가세요”라고 직접 당부한 것으로 알려진 뒤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사장들 대부분은 휴가를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불편한 상황에 빠졌다. 차라리 출근하는 게 마음이 훨씬 편하겠지만 최 실장의 당부를 어길 수도 없어서다. 한 계열사 사장은 “하루이틀 휴가를 내더라도 집 근처를 왔다갔다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반면 부장급 직원은 “실적 부진 등으로 경영진이 휴가를 가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최 실장이 지시해줘 다행”이라며 “아랫사람들이 휴가를 사용하는 데 눈치를 덜 보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은 매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2주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외의 생산공장 인력들이 휴가를 갈 때 사장단도 쉬곤 했다. 최 실장도 지난 2년간 이 시기에 금·토·일 사흘간 미래전략실 팀장들과 함께 평창 휘닉스파크, 횡성 오크밸리 등으로 떠났다.

그러나 올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 실장이 휴가 일정을 잡지 않으면서 미래전략실 팀장들은 물론 계열사 사장들도 휴가를 가지 않는 분위기였다. 임원 가운데서도 휴가를 확정 짓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최 실장은 다만 내수 진작 차원에서 임원은 되도록이면 국내에서 휴가를 보낼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본인의 휴가에 대해선 “알아서 가겠다”고만 밝혔다고 한다.

최 실장은 이 회장이 입원한 5월11일 이후 주말을 포함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삼성서울병원으로 병문안을 가고 있어 실제 휴가를 떠날지는 불투명하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