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제철은 동부그룹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건설·조선 등 철강 수요가 크게 줄고 국내외 철강 공급은 늘어나면서 영업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동부건설 동부메탈 동부하이텍 등 다른 비금융 계열사의 수익성도 좋지 않았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그룹 유동성 위기가 심해지자 작년 11월 동부메탈과 동부하이텍을 매각하는 내용의 3조원 규모 자구계획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당시 선제적 기업 구조조정의 모범 사례로 동부를 꼽았다.

하지만 이후 7개월간 성과를 낸 것은 거의 없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당초 동부그룹이 팔기로 한 계열사와 자산 등을 특수목적회사(SPC)에 담아서 산은이 인수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우선 공급하고, 각 계열사와 자산은 순차적으로 팔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사를 해 보니 얘기가 달랐다. 매각 대상 자산이 대부분 담보로 잡혀 있는 등 SPC 설립 자체가 쉽지 않았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산은이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에 파는 패키지 매각을 추진하면서 동부와 채권단 간 갈등이 깊어졌다. 동부그룹은 “경쟁 매각을 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며 반발했다.

포스코의 인수 거부는 결정타였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재무적 부담에 비해 사업성이나 시너지가 크지 않아 인수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동부그룹 쪽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했는데도 유동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것에 대해 산은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지난해 STX·동양그룹이 잇달아 무너진 것을 계기로 정부가 도입한 ‘선제적 구조조정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산은은 작년 말부터 매주 주요 계열사 구조조정 현안을 점검하는 회의를 열고 있지만, 동부의 재무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동부그룹 사례에 비춰 선제적 구조조정이 이해 당사자 간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하는 등 허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