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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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태평로 신한은행 본점 1층 화장실에 30~40대 여성 여럿이 모여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우는 여성들 가운데 웃는 이들도 섞여 있어 영문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들은 이날 신한은행에서 시간선택제 근무 직원으로 뽑혀 사령장을 받은 220명의 직원 중 일부였다. 신한은행이 육아 등으로 회사를 관둔 경력 단절 여성을 하루 네 시간 시간선택제 직원으로 채용하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행에 성공한 이들이다.

사령장 수여식에서 서진원 신한은행장(63)이 격려사를 통해 “육아와 가사를 챙기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과거 어느 신입직원들보다 열심히 수업에 참여한 여러분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고 한 말에 감동한 것이다. 게다가 서 행장이 행사장을 떠나기 직전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보이며 “여러분, 사랑합니다”고 외치자 눈물을 참고 있던 다른 ‘아줌마’ 신입 여직원들도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터뜨렸다.

신한 임직원들은 진정성을 보이며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게 바로 서 행장의 리더십이라고 입을 모은다. 남매 많은 집안의 맏이처럼 감정 표현에 서툴지만 진정성이 묻어나는 따뜻함으로 직원을 감싸 안는다는 것이다.

○남몰래 보낸 편지에 직원 감동

다정다감한 서 행장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하는 여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난해 여름부터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온 200여명의 여직원에게 직접 고른 책과 직접 쓴 편지를 전해왔다. 이런 사실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한 여직원이 지난 3월 사내 게시판에 감사 글을 올리면서 공개됐다.

글을 올린 직원은 “행장님이 보내주신 봉투를 동료 직원들과 모여 뜯기 전에는 ‘내가 뭘 잘못한 일이 있나’ 하고 불안했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육아와 업무 모두 훌륭하게 해내고자 노력하는 여러분이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는 편지가 있어 읽는 순간 가슴 뭉클했다”고 전했다.

서 행장은 “육아휴직 후 복직했거나 몇 년간 직장에 다니지 않다가 시간선택제로 들어온 여직원들은 회사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작은 행동으로 동기 부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 행장은 1991년 신한은행의 초대 인재개발실장을 지내면서 직원들에 대한 애정을 다지게 됐다고 한다. 직원의 교육·연수를 맡고 있는 인재개발실은 이전에는 인사부 내 연수과로 소속돼 있었지만 서 행장이 인재개발실장으로 발령받으면서부터는 별도 조직으로 독립했다.

서 행장은 인재개발실장을 맡으면서 한 일 가운데 포장마차 프로그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정기 연수를 마친 부·차장들을 은행 근처 포장마차로 초대해 경영진이 직접 어묵과 떡볶이 등 먹거리를 서빙하며 소통공간을 마련했다.

○‘뚝배기’ 업무 스타일

서 행장은 인사부 외에 여러 부서를 많이 거쳤다. 정보기술(IT) 관련 업무부터 인수합병(M&A) 담당 임원까지 업무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1997년부터 3년 동안 은행권 최초로 비(非)IT 출신 전산정보부장을 맡았다. 은행 경영진이 의도한 인사였다. IT부서를 신한은행의 다른 직원들과 융합시키라는 특명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IT부는 은행 업무의 보조 역할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부터 은행 경영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해서다. 카드를 비롯해 은행의 각종 금융서비스를 IT 없이는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IT부 직원들은 전문성을 명분으로 은행 내 다른 부서와 심리적인 칸막이를 치려는 경향이 있었다.

서 행장은 “6개월간 업무 전문성을 익히면서도 직원들과 친해지느라 1주일이 멀다 하고 몸살을 앓았지만 IT부장을 지내면서 외환, 카드 부문 등의 전산시스템을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성공적으로 전환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고 회상했다.

신한금융지주 부사장 시절에는 LG카드 인수를 주도하며 다시 한번 업무능력을 주목받았다. 신한금융이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계열사별 당기순이익 포트폴리오에서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것도 LG카드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서다.

서 행장은 2006년 지주의 전략담당 부사장(CSO)으로서 핵심인력 6명과 함께 신한은행 본점 인근 명지빌딩에 따로 사무실을 차렸다. 우리은행, 농협중앙회, 스탠다드차타드은행, 하나금융 등이 LG카드 인수전에 뛰어들며 피말리는 레이스를 펼쳤다. 인수팀은 당시 하나금융과 손잡은 MBK가 신한금융이 예상한 인수가격(주당 6만7000원)보다 높게 입찰할 것으로 판단, 이를 받아들인 경영진이 마감 10분 전에 주당 6만8000원으로 가격을 올려 LG카드를 인수할 수 있었다.

주변에선 서 행장이 평소에 강조하는 ‘뚝배기’ 정신이 이때 빛을 발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매번 술자리에서 “뚝심 있게, 배짱 있게, 기운차게”라고 건배사를 외친다. LG카드 인수전에서도 이 같은 뚝배기 정신으로 LG카드의 가치를 평가하고 과감하게 베팅한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자율과 책임 동시에 물어

서 행장이 2010년 12월 취임한 뒤 신한은행은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줄곧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1분기 당기순익도 42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8%, 전분기 대비 50.1% 늘었다.

신한은행 임원들은 이런 성과가 서 행장만의 독특한 리더십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서 행장은 취임 초부터 한 달에 여덟 차례 열리는 임원 회의에 두 번 정도 참여하고 있다. 임원들이 좀 더 자유롭게 토론하며 경영 전략을 짜라는 의미에서다.

이를 통해 결정된 사안에 대해선 “단디(‘단단히’의 사투리)해라”는 말을 남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신한은행의 한 임원은 “선 굵게 일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아 ‘단디하라’는 말 한마디에 긴장할 정도”라며 “자율을 주면서도 철저히 책임을 묻는 게 서 행장의 경영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서 행장은 앞으로는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은행을 이끌 계획이다. 우선 고객에게 돌아간 수익률이 어느 정도인지를 직원 실적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은행권에선 처음이다. 핵심성과지표(KPI)에 ‘고객 수익률’ 항목을 신설하는 방식이다. 자산관리(WM)그룹과 프라이빗뱅킹(PB)센터 및 PB 팀장 등의 평가에 적용한다. 올해 안에 평가기준을 보완해 내년엔 모든 영업점 직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 서진원 은행장 프로필

△1951년생
△대구 계성고 졸업(1969년)
△고려대 사학과 졸업(1974년)
△신한은행 입행(1983년)
△신한은행 인력개발실장(1991년)
△인사부장(2000년)
△신한은행 부행장(2004년)
△신한금융지주회사 부사장(2006년)
△신한생명 대표이사 사장(2007년)
△신한은행 은행장(2010년 ~ )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