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신평사 '등급 장사' 막으려면 수수료 체계부터 바꿔야
마켓인사이트 6월24일 오후 4시51분

신용평가회사들이 기업들 입맛에 맞춰 신용등급을 매기는 이른바 ‘등급 장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신용평가사 사이에 형성된 고질적인 ‘갑(甲)’과 ‘을(乙)’의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신용평가를 받는 기업이 일정 기간마다 신용평가사를 교체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안1:경쟁을 가미한 순환평가제

회사채 발행 기업이 3개 신용평가사 중 2개사를 ‘자율적’으로 선택해 신용등급을 받은 뒤 신용평가 수수료를 지급하는 현행 복수평가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신용평가사 ‘선택권’을 가진 기업들이 높은 신용등급을 주는 곳에 업무를 맡기는 ‘등급 쇼핑’을 하고, 신용평가사는 여기에 굴복해 부풀려진 등급을 주는 관행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막는 대안으로 기업이 일정 기간마다 의무적으로 신용평가사를 바꾸도록 하는 ‘순환평가제’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순환평가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신용평가사들이 의무 교체로 인해 신용평가 업무를 배정받게 되면 아무런 경쟁 유인이 없어지게 되고 이는 자칫 평가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따라 현행 복수평가제와 순환평가제를 병행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채권분석팀장은 “기업들이 현행처럼 2개 신용평가사에서 복수평가를 받게 하되, 신용평가사 한 곳은 순환평가제를 적용받고 나머지 한 개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선정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이러면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장사 유인도 낮추면서 평가품질 경쟁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2:평가수수료 차등지급제

기업들이 신용평가를 받을 때 지급하는 평가수수료를 제3의 공적기관이 관리하는 ‘공동 기금’으로 조성한 뒤 이를 나중에 각 신용평가사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수수료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한 대형 증권사 채권 발행 담당 임원은 “평가수수료를 평가 대상 기업이 아닌 제3의 기구에서 받게 되면 발행사 입김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어 등급 인플레이션이나 등급 쇼핑과 같은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3의 기관이 신용평가사에 수수료를 배분할 때 일정 비율은 해당 기간 평가 결과를 반영해 배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평가를 잘한 신용평가사가 더 많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구조’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전직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금융투자협회에서 매년 실시하는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기관투자가의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신용평가사에 더 많은 수수료를 분배하는 방식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대안3:공시 강화

신용평가사들이 평가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신용평가사들은 부도율 산정 기준도 제각각이어서 통일된 잣대로 업무 실적을 평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는 “통일된 기준에 근거한 부도율을 공시하도록 하고 독립된 외부 기관들이 신용평가사를 평가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을 활성화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신용평가사 간 우열이 가려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개별 기업만이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압력을 주는 경우도 있어 신용평가사들이 공정한 평가를 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특정 기업집단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공시하는 방안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