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선행학습 막아야 하나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 금지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해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유치원과 초중·고교 등이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에 앞서 선행학습을 시키거나 고입·대입 등 입시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이를 위반하면 교육부가 해당 교육기관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관련 교원 징계, 재정 지원 중단 및 삭감, 학생 정원 감축 등의 행정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학원 등 사교육 업체의 경우 선행학습 관련 광고선전을 금지하고 있다.

[맞짱 토론] 선행학습 막아야 하나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2013년 사교육비·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는 목적으로 가장 먼저 꼽은 것은 ‘학교수업 보충’으로 전체의 44.3%를 차지했다. 이어 선행학습(25.2%), 진학 준비(14.4%) 등의 순이었다. 진학 준비도 선행학습과 비슷한 의미라고 보면 학원에 가는 학생의 40% 정도는 선행학습이 목적임을 추정할 수 있다. 대부분 고교에서도 3년 동안 배워야 할 교육과정을 2년 안에 마치고 3학년 때는 문제풀이 등 입시에만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선행학습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쪽은 선행학습이 공교육을 황폐화시키고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가중시키는 만큼 법을 통해서라도 강력하게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예습도 선행학습의 일종인데 어디까지 금지 대상에 포함시킬지 모호할 뿐 아니라 공교육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하면 사교육에 더 매달릴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주 맞짱토론은 ‘선행학습, 법으로 규제해야 하나’를 놓고 찬성 측 윤유진 성균관대 사교육정책중점연구소 교수와 반대 측 동아대 교육학과 교수가 논리 대결을 펼쳤다.

찬성 교권 침해·사교육 부채질…학교 교육 황폐화 ‘주범’

현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인 선행학습 금지법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6개월 뒤 시행되면 무리하게 상급 과정을 배우거나 시험에 나오는 선행학습이 적어도 초·중·고교 현장에서는 사라질 것이다. 고등학교 및 대학 입시에서도 상급 교육과정 내용의 논술이나 면접 질문이 금지돼 수험생의 부담도 줄 것이다. 선행학습 금지법은 공교육의 정상화 측면에서나 학생의 발달 측면에서 정당성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맞짱 토론] 선행학습 막아야 하나
일부 학교 관계자들은 선행학습의 주범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규제의 실효성이 없고,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사교육으로 몰려가게 만드는 등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학교에서 선행학습 내용을 시험에 출제하는 사례가 미미하다는 서울시교육청의 발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다.

교 현장의 선행학습 실태는 어떨까. 성균관대 사교육정책중점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에서 영어와 수학 선행학습을 한다는 학생의 응답비율은 각각 28%와 22%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사교육 유발 원인 중 선행학습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5.2%라고 발표했다. 입시 준비라는 명목 아래 3년의 교육과정을 2년에 마치거나 1~2주 걸리는 한 단원의 학습을 10분에 끝내는 관행이 금지되면 사교육 선행학습을 받지 않은 아이가 수업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교육 선행학습 안 받아도 수업서 소외받는 학생 없을것

교육부 등이 주최하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이 주관한 ‘선행학습 없는 바른 교육 만들기 공모전’에 출품한 강화도의 한 여학생 글은 매우 충격적이다. 중학교 첫 수학시간에 새 공식을 이해하느라 애쓰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이미 교사가 낸 응용문제를 풀고 있더라는 것이다. 교사는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의 대답을 토대로 빠르게 진도를 나갔다. 알고 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학 동안 학원에서 다음 학기 내용을 모두 선행학습했다. 대부분 과목에서 한 학기 분량을 미리 배운 학생들을 기준으로 진도가 빠르게 나가 급기야 이 학생은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고 한다.

선행학습이 학교에서 교육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 등 대도시가 아니라 시골의 작은 중학교 얘기라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이런 일을 겪은 학생이라면 부모를 졸라 학원에 등록할 수밖에 없다. 학교가 나서서 “이기면 그만”이라는 불법·편법 풍토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학교가 교육과정을 준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함에도 선행교육을 없애자는 주장에 불안한 마음을 갖는 것은 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정받은 고등학교에서 반편성 시험을 알리는 가정통지문을 보냈는데 시험 범위가 고교 1학년 과정이었다는 사례도 있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부모라도 자녀에게 사교육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을 수 없다.

유럽 국가, 특히 독일과 프랑스 등은 선행학습을 비교육적 행위로 보고 엄격히 금지한다. 교권에 대한 침해요, 다른 아이들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는 이유에서다. 아이가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발견되면 학부모는 교사로부터 준엄한 면담 요청을 받는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준수하는 것은 아이들의 발달에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이 법안을 지지하고 있다.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고 자녀를 중·고교에 보냈다가 낭패본 학부모들은 더 큰 목소리로 찬성한다. 학부모들은 웬만한 수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내용을 1주일에 고작 몇 시간 개략적으로 가르치는 학교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고 했다.

교사들도 할 말이 있다. 학생들이 사교육을 통해 다 배워오기 때문에 원리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진도를 나가면 실력 없는 교사로 생각되기 십상이고, 심지어 흥미를 잃은 학생들은 엎드려 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목고에 진학해야 서울지역 명문대학을 지망할 수 있다는 현실이 선행학습을 더욱 부추긴다고도 지적했다.
[맞짱 토론] 선행학습 막아야 하나
“학생들 질문할 기회 빼앗아”…독일·프랑스 등은 엄격 금지

은 논란에도 선행학습 금지법이 갖는 긍정적인 의미는 적지 않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을 시험 등에 출제하지 않으면 선행학습을 위한 학습 부담은 줄 것이고 사교육비 지출도 자연히 감소할 것이다. 학교에서 원리부터 가르치면 암기 위주의 사교육은 무익해지고 그 필요성도 감소할 것이다. 기초 원리를 질문하는 학생이 당당해질 수 있도록 기본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학교 교육만 받으면 충분히 성적이 나오고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학부모들은 ‘취업 등에 있어 출신 대학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특목고와 명문대 등 주요 입시에서 점수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사교육을 시킨다고 응답하고 있다. 사교육 선행학습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후속 조치로 이뤄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로 등골이 휘고, 학생들은 과도한 학업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한국 현실에서 저출산은 너무나도 당연할지 모른다. 이 법이 선행학습과 사교육으로 그늘진 학부모와 학생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면서 행복한 교육으로 가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반대 모호한 처벌기준 혼란 초래…학습선택권 침해 위헌 소지

선행학습 금지법의 제정 배경이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한다.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각종 시험 및 입시에 교육과정 내용만 출제하며, 이를 위반하면 행정조치 등을 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적인 관점이나 실효성에 있어서는 우려스런 대목이 많다.

[맞짱 토론] 선행학습 막아야 하나
법은 공교육 부실 및 사교육 증가의 원인을 너무 단순하게 진단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 교육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그 주된 원인이 선행학습과 교육과정 이외의 문제 출제 등이므로 이를 금지하면 사교육이 줄어들어 공교육이 정상화될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런 진단이나 분석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고 타당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사교육 유발 요인이 선행학습이나 교육과정 이외의 출제뿐 아니라 지나치게 어려운 교육과정과 과다한 학습량, 사회구조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또 사교육 유발 요인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은 학생과 학부모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 해소와 신뢰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규제·단속 위주 대책 부작용…또다른 형태 사교육 유발

이런 점에서 규제, 처벌, 단속 위주의 선행학습 금지법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 힘들다. 사교육에 대한 분명한 대책 없이 공교육에 대한 규제와 처벌, 단속을 강화하면 이는 곧 공교육을 위축시켜 사교육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육과정 운영이 비교적 자유로운 특수목적고나 영재교육기관 진학을 위한 유ㆍ초ㆍ중학생의 사교육이나 온라인을 통한 사교육 등 새로운 형태의 사교육을 유발할 여지도 있다. 단속으로 사교육이 음성화하면 고액과외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선행교육’에 대한 정의와 범위가 모호해 교육 현장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교육과정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각각의 해석에 따라 많은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교과서에 실린 내용만 교육과정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교육과정에 근거한 관련 내용까지도 교육과정상의 내용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학교 시험이나 입시에서 출제된 특정 문제가 선행 내용인지, 심화 내용인지, 교육과정을 벗어난 것인지에 대한 판단기준이 불명확할 경우 이는 곧 사회적, 법적 문제로 비화될 여지도 있다. 각종 시험 및 입시에서 교육과정 이외의 문제 출제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교사와 학교장을 처벌한다고 하면, 이는 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해 학교 교육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행학습 금지법은 국민의 기본권, 교육의 자율성과 넒은 의미의 교육권, 학습자의 학습 선택권 등을 고려할 때 위헌 소지도 있다. 단속이 쉽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된다. 법이 시행되면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규제가 가능하겠지만, 사교육 기관의 단속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혹자는 학파라치 도입 등을 주장하지만 이런 정책은 국민을 감시자로 만들고, 학교와 학생 간, 학부모 간의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 금지된 사교육 수강에 따른 학생들의 죄책감과 이로 인한 부정적인 자아 형성, 교권 추락 등의 교육적 문제도 초래할 수 있다.
[맞짱 토론] 선행학습 막아야 하나
수업 질 개선·교사 전문성 등 공교육정상화 대책 더 시급

무엇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토대로 근본적인 공교육 정상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교육의 수준 향상과 질적 개선이다. 공교육의 질과 관련된 요인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수업의 질적 개선과 이를 위한 교사의 수업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업의 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교사가 수업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학급당 학생 수 감축, 교사들의 수업시수 및 업무(잡무) 경감, 교권 확립을 위한 대책 등을 통해 교사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교육과정(교과서)의 수준과 학습량을 적절하게 조절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선행교육의 여지를 없애는 것도 필요하다.

교육 정상화 대책과 아울러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 구조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취업, 승진, 결혼 등에서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런 사회를 만들려면 국민 모두의 의식 변화가 전제돼야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국가적인 차원의 제도적 지원도 중요하다. 사실 지금처럼 학력이나 학벌에 의한 편견이나 차별이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에서는 교육정책이나 입시 제도를 아무리 획기적으로 바꿔도 입시경쟁이나 사교육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공교육 정상화도 요원하다. 따라서 공교육 정상화 정책 추진과 아울러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반드시 뒤따라줘야 한다.

취지나 목적이 타당하고 바람직하다고 모든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속이나 규제 위주의 사교육 정책이나 교육 정책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교육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많다. 교육의 본질과 교육의 자율성을 살리면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책이나 대안이 필요하다. 교육은 인간을 형성하는 백년대계이기 때문이다.

■ 읽을 만한 자료

△사교육비 및 의식조사 보도자료(교육부, 2014)
△선행학습 실태 및 학습 부담에 대한 연구(김현철, 윤유진, 2013)
△학교교육 내 선행학습 유발 요인 분석 및 해소 방안 연구(김정민 등, 2013)
△새 정부 핵심 교육정책 진단(한국교총, 현장점검 토론회, 2013)
△선행학습 실태와 바람직한 규제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 자료집(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2013)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